1978년 7월 25일, 영국 맨체스터 인근 올덤 종합병원 분만실에 혁명적 울음이 울려 퍼졌다. 인류 최초로 체외수정 과정을 거쳐 태어난 루이스 조이 브라운은 2.58㎏의 작은 몸으로 의료계·종교계·정치권의 격렬한 논쟁 한가운데 떨어졌다. 여덟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생명이었지만 ‘시험관’이라는 낯선 단어는 “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비난과 “불임 커플에게 열린 구원의 문”이라는 찬사를 동시에 불러왔다. 시술을 주도한 패트릭 스텝토·로버트 에드워즈·진 퍼디 팀은 배아 배양을 위해 102번의 실패를 견디며 의학사뿐 아니라 세계사의 경계를 흔들었다. 생명 탄생의 권한이 자연에서 기술로 이양되는 순간, 우리는 어떤 책임과 공포를 함께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묻는 시계추를 작동시켰다.
브라운의 탄생이 던진 첫 질문은 “생명은 누구의 설계로 정의되는가”다. 세계 성인 인구의 6분의 1이 난임을 겪는 현실(WHO)에서 체외수정은 평등을 약속하지만, 회당 수백만 원에 이르는 비용은 다시금 지불 능력을 기준으로 태아 시장을 계층화한다. 생물학적 우연이 사라질 때 우리는 ‘우연이 빚어낸 다양성’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인간 존엄의 정의는 더 이상 철학 교과서가 아니라 배양기와 보험 약관, 국경을 넘나드는 의료 관광 상품 안에서 재작성되고 있다.
영화는 이 모순을 특유의 은유로 응시한다. 〈가타카〉(1997, 앤드루 니콜, 106분, SF·드라마, 시체스 영화제 작품상) 속 근미래 사회는 수정란 단계에서 유전자 ‘불순물’을 제거해 계층을 분리한다. ‘유전자 부적격자’ 빈센트는 우주비행사의 꿈을 위해 타인의 염기서열을 훔치며 신체 검열을 통과한다. 〈네버 렛 미 고〉(2010, 마크 로마넥, 103분, SF·멜로, BIFA 작품상 노미네이트·캐리 멀리건 새턴상 여우주연상 후보)는 기숙학교 아이들이 인간 장기 공급을 위해 복제된 존재임을 서서히 밝혀낸다. 두 작품은 기술이 만든 ‘등급’과 ‘대체 가능성’을 파고들며 인간다움의 경계를 되묻는다.
브라운이 촉발한 논쟁이 ‘신성모독이냐 의학적 구원이냐’의 양자택일이었다면, 위 두 영화는 훨씬 복잡한 스펙트럼을 제시한다. 〈가타카〉의 DNA 확인 게이트는 이력서보다 먼저 인간을 분류하고, 〈네버 렛 미 고〉의 헌체 제도는 ‘기증’이라는 미화로 생존권조차 등급화한다. 이는 1978년 올덤 분만실엔 없었던 세 번째 선택지—생명을 ‘선택’할 권한—을 시청각적으로 형상화한다. 과학은 윤리 논쟁의 종착역이 아니라 출발점임을 일깨우며, 우리에게 ‘생명 불가침’ 관념을 해체할 준비가 되었는지 되묻는다.
47년이 지난 오늘, 체외수정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2023년 영국에서만 20,700명의 아기가 IVF로 태어났고, 전 세계 누적 ‘시험관’ 출생은 1,200만 명을 넘어섰다. 올가을 넷플릭스 공개 예정인 영화 〈Joy〉가 브라운의 중간 이름을 제목으로 택한 것도 이 기술이 사적인 비밀에서 대중문화 자산으로 편입됐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비용·종교·정책의 차이는 국경마다 다른 서사를 쓰고, 저소득 국가는 IVF 접근률이 1%에도 못 미친다. 과학이 생명을 확장할수록 기회 격차도 함께 커지고 있다.
루이스 브라운이 성장하며 ‘프랑켄베이비’라는 비난과 싸워야 했던 경험은 기술을 둘러싼 두려움이 결국 인간 내부의 편견을 투사한 결과임을 보여 준다. AI가 배아 유전자를 예측하고, 다자 부모권이 법제화되는 시대에 기술은 속도를 높이지만 윤리·제도·공동체 상상력은 이를 따라잡지 못할 수 있다. ‘설계 가능한 생명’이 우리 사회에 던질 가장 중대한 질문은 무엇일까? 다음 세대가 태어날 배양기의 온도를 결정할 손이 우리 자신임을 자각한다면, 그 온도는 과연 몇 도여야 옳을까. 당신은 인류라는 이름으로 어떤 수치를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7월 4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생명의 설계와 윤리](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the_hurt_locker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