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세상
세계와 스크린 사이
9월 4째주 · 2025
[9월 2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전쟁의 시작
영화로 세상을 보다

[9월 2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전쟁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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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9월 1일 새벽, 독일 전함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 단치히(오늘날의 그단스크)를 포격하며 폴란드 침공이 시작됐다. 바로 그 전날 밤, 나치는 폴란드인으로 위장해 라디오 방송국을 습격하는 ‘글라이비츠 사건’을 조작하여 전쟁 명분을 만들었다. 이틀 뒤인 9월 3일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하면서, 이 국지적 침공은 세계대전으로 번졌다. 6년 동안 이어진 전쟁으로 사망자는 7천만에서 8천5백만 명에 이르렀다. 국경이 무너지는 데는 단 몇 시간이 걸렸지만, 그 대가는 여러 세대에 걸쳐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이번 주의 사건은 ‘국경’의 실체가 무엇인지 묻는다. 국경은 단순히 지도 위의 선이 아니다. 거짓을 걸러내는 검증의 습관, 권력의 속도를 늦추는 절차, 무력 사용을 억제하는 규범의 연결망 그 자체다. 나치는 ‘힘믈러 작전’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차례 위장 공격을 벌여 진실을 흐리고 신속하게 침공을 현실화했다. 이처럼 사실을 확인하는 신중한 과정이 무시될 때, 전쟁은 총성이 아니라 언어의 왜곡으로 먼저 시작된다. 9월 1일은 포성이 울린 날인 동시에, 조작이 현실을 대체한 날이기도 했다.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전쟁의 시작이야말로 국경을 안쪽에서부터 무너뜨린 균열이었다.

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은유하는 영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1975)를 꼽을 수 있다. 여름 휴양지인 아미티 해변의 시장과 상인들은 상어의 위험을 알면서도 ‘성수기’라는 이유로 해변 폐쇄를 주저한다. 보안관 브로디, 해양학자 후퍼, 상어 사냥꾼 퀸트는 각자의 윤리와 전문성을 내세워 맞서지만, 마을 회의에서는 늘 “지금은 안 된다”는 계산이 앞선다. 상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수면 아래에 숨어 있고, 관객은 보이지 않는 위협 앞에서 더 큰 공포를 상상하게 된다. 이러한 영화의 설정은 우리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가늠하는 실험처럼 보인다. 언제 해변을 닫을 것인가? 누구의 목소리를 먼저 들을 것인가? 어떤 증거를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사건과 영화는 상징을 통해 더욱 정교하게 교차한다. 해변은 국경이며, 파라솔과 매표소는 ‘일상’이라는 이름의 방어선이다. 해변을 ‘열어두자’는 시장의 한마디는 2차 세계대전 직전, 히틀러의 야욕을 외면했던 1938년의 유화정책과 1939년 새벽의 침묵을 떠올리게 한다. 보이지 않는 상어는 조작과 외면이 만들어낸 위협이며, 등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이미 늦다. 두 개의 음으로 된 존 윌리엄스의 주제곡은 위험의 존재를 미리 감지하게 하는 공동체의 경고음이자, 우리가 놓쳐버린 경보의 잔향이다. 이 음악은 ‘보이지 않음’을 공포의 언어로 번역하며, 규범이 무너질 때 현실이 얼마나 순식간에 무너지는지 체감하게 만든다. 아카데미 편집상이 증명하듯, 영화의 긴장감 넘치는 완급 조절은 경고-묵살-참사의 반복을 서사의 구조로 각인시킨다.

오늘날의 세계 정세가 풀어야 할 숙제 또한 분명하다. 허위정보와 위장 공격은 1939년의 낡은 수법이 아니라, 여전히 유효한 전쟁의 공식이다. 전쟁은 전선에서만 일어나지 않고, 난민, 물가, 노동 시장, 교육 및 보건 시스템의 균열을 통해 우리 일상으로 파고든다. 2025년 1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 약 680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기록됐고, 유럽연합에서 임시보호 지위를 얻은 사람은 6월 말 431만 명을 넘었다. 숫자는 정책의 속도를 압박하지만, 경계는 숫자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신중한 검증과 절차, 그리고 ‘해변을 닫을 용기’야말로 첫 번째 방어선이다.

결국 9월 첫째 주의 역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속한 공동체는, 위협이 아직 수면 아래에 있을 때 해변을 닫을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위험을 키우는 것은 상어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을 외면하는 ‘부인(否認)’과 ‘합리화’라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영화 〈죠스〉가 보여준 진짜 공포는 괴물의 이빨이 아니라 침묵으로 가득했던 회의장이었다. 국경과 경계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지켜내는 기술이다. 그 기술을 잊는 순간, 전쟁은 다시 새벽의 포성과 함께 시작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증거를 믿고,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떤 절차를 따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