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0월 16일, 멕시코시티 올림픽 200m 시상대 위에 선 두 흑인 선수는 신발을 벗고 검은 양말과 장갑을 낀 채 고개를 숙였다. 금메달을 딴 토미 스미스와 동메달리스트 존 카를로스는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검은 장갑 낀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올림픽 인권 프로젝트(OPHR)’ 배지가 붙어 있었고, 곁에 선 호주 선수 피터 노먼 역시 같은 배지를 달고 있었다. 이 제스처는 흑인 빈곤과 자긍심, 린치와 노예제의 기억을 응축한 ‘인권 선언’이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를 “올림픽 정신을 훼손한 정치적 행동”이라 규정하고 둘을 즉각 선수단에서 제명했다. 며칠 전 같은 대회에서 조지 포어맨이 성조기를 흔들며 링을 돌 때는 누구도 그것을 정치라고 부르지 않았다. 같은 경기장, 다른 몸짓. 10월 셋째 주의 이 사건은 질문을 남긴 채 지금까지 이어진다. 도대체 스포츠라는 무대에서 ‘정치적’이라는 낙인은 누구의 몸에만 찍히는가.
검은 장갑 시위가 드러낸 것은 인종차별의 구체적 실태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깊은 층위에는 “흑인의 몸은 언제나 이미 정치적이며, 백인의 몸만이 비정치적·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시선의 비대칭이 있다. 스미스와 카를로스의 주먹은 소리를 내지 않는 항의였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텔레비전과 사진, 신문 지면을 통해 세계를 울린 거대한 발화였다. 반대로, 그들을 징계한 IOC와 미국 올림픽 위원회는 자신들의 결정을 “올림픽의 중립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인종차별을 둘러싼 구조적 폭력을 비가시화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흑인 선수들의 무릎 꿇기, 세리머니, 유니폼 문구 하나하나가 논쟁의 대상이 돼온 것은, 이 구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결국 문제는 “운동장에서 정치하지 말라”가 아니라, “어떤 정치만이 허용되고 어떤 정치만이 처벌받는가”에 가깝다.
조던 필 감독의 영화 〈겟 아웃〉(Get Out, 2017)은 이 비대칭의 감각을 가장 날카롭게 시각화한 공포 영화다. 러닝타임 104분, 장르는 심리 호러이자 블랙코미디, 사회 풍자극에 가깝다. 흑인 사진가 크리스는 백인 여자친구 로즈의 집에 초대받아 주말을 보내게 된다. 로즈의 가족과 이웃은 “흑인 문화가 정말 좋다”, “오바마를 세 번이라도 찍었을 거다”라며 친절을 가장한 말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점점 이상한 기류가 드러난다. 집 안의 흑인 하인들은 기이할 정도로 공손하고, 인근 마을 흑인들은 마치 다른 사람의 껍데기를 쓴 것처럼 어색하게 웃는다. 이야기가 진실에 다다를 때, 관객은 이 부유한 백인 가족이 흑인들의 몸을 빼앗아 자신들의 의식을 이식하는 기괴한 수술을 통해 사실상 ‘신체를 거래’하는 집단임을 알게 된다. 영화는 “노골적인 인종 혐오” 대신 “세련된 리버럴의 호의”가 어떻게 흑인성을 전유하고 지배의 도구로 삼는지를, 피와 웃음을 뒤섞은 공포의 형식으로 드러낸다.

![[10월 3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검은 장갑과 백색 공포](/api/image?url=https%3A%2F%2Fcdn.asia24.co.kr%2Fimages%2Ftmdb%2Fdcc6f798b5627d591606db6aa95f64ba.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