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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조끼 운동 첫날 참여 규모
French Interior Ministry / Reuters (2018-11-17)
이 구조적 분노와 좌절을 보다 어둡고 극단적인 감정의 언어로 번역한 영화로,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Joker, 2019)를 떠올릴 수 있다. 러닝타임 122분, 심리 스릴러·범죄 드라마 장르로 분류되는 이 영화는 미국 코믹스 세계관에서 악당의 탄생기를 가져와, 복지 축소와 불평등 심화 속에서 무너져가는 도시의 초상을 그린다. 주인공 아서 플렉은 파트타임 광대이자 코미디언 지망생이지만, 공공 정신건강 서비스 축소로 약도 끊기고, 버스 안에서 아이와 웃었다는 이유로 민원을 당하고, 직장에서는 ‘웃음거리’로 이용당한 뒤 버려진다. 지하철에서의 우발적 살인과 연쇄적인 폭력, TV 쇼 생방송 스튜디오에서의 총성 끝에 그는 마침내 ‘조커’라는 이름으로 거리에 선다. 영화 속 고담시에서 광대 가면을 쓴 군중은, 쓰레기가 쌓이고 복지와 일자리가 무너진 도시에서 “더 이상 소리칠 곳도, 들을 귀도 없는 사람들”의 분노가 익명성 뒤에 집결한 형상이다. 〈조커〉는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며, “불평등 시대의 가장 불편한 자화상”이라는 평가를 낳았다.
2018년 프랑스의 노란 조끼와 〈조커〉의 광대 가면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지만, 둘 다 ‘보이지 않던 존재가 스스로를 과장된 상징으로 드러내는 순간’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노란 안전조끼는 원래 사고 현장에서 운전자의 몸을 눈에 띄게 하기 위한 도구다. 그 조끼가 시위의 상징이 됐을 때, 그것은 “사고가 나고 있는 것은 도로가 아니라 우리 삶 전체”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마찬가지로 〈조커〉의 광대 분장 역시 타인의 웃음을 위해 고용된 인물이 자신의 모멸과 상처를 과장된 얼굴로 드러내는 행위다. 노란 조끼가 교통 체계를 멈추며 “더 이상 이 구조를 그대로 달리게 둘 수 없다”고 말하듯, 조커의 춤과 폭력은 “당신들이 만든 도시가 이미 망가져 있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물론 현실의 노란 조끼는 민주적 요구와 폭력, 극우·극좌가 뒤섞인 복잡한 운동이었고, 영화 속 조커는 명백히 파괴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둘을 나란히 놓을 때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제도 정치와 주류 담론이 포착하지 못한 균열들이 어떻게 상징과 폭발의 형태로 튀어나오는가 하는 메커니즘이다.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 2018. 유류세 인상에 반발한 시민들이 형광 조끼를 입고 프랑스 전역에서 시위를 벌였다 ⓒ Reuters / Gonzalo Fuentes
조커 (2019), 토드 필립스 감독. 사회에서 소외된 아서 플렉이 군중 속 상징이 되는 장면 ⓒ Warner Bros.
오늘의 세계에서 이런 균열은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확산되고 있다. 팬데믹과 고물가, 주택 가격, 청년 고용 불안이 겹치면서, OECD 다수 국가에서 상위 10%와 하위 10% 간 소득 격차와 자산 집중은 더 심해졌고, 상속·부동산·금융자산을 통한 부의 대물림은 “다시 상속의 시대”라는 말까지 낳는다. 동시에 기후위기의 비용은 전 세계 최하위 50%가 거의 기여하지 않았음에도, 상위 10%의 고탄소 생활 방식 탓에 훨씬 더 가혹하게 돌아온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휘발유 가격 인상”이나 “대중교통 요금 조정”, “청년층 복지 삭감”은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라, 이미 기울어진 저울의 한쪽에 더 무게를 얹는 행위가 된다. 그때 정치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구조적 불평등의 원인을 정면으로 건드리며 조세와 복지, 노동·주거 체계를 재설계하든지, 아니면 분노를 ‘과격한 소수’의 일탈로 축소하고 치안·질서의 언어로만 응답하든지다. 후자를 택할수록, 노란 조끼와 조커의 얼굴은 더 자주, 더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결국 11월 셋째 주 프랑스 도로 위의 노란 조끼와 스크린 속 조커의 미소는, “불평등과 위기를 관리하는 방식이 어떤 사회를 만들어내는가”라는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노란 조끼 운동은 분열과 피로, 정부의 부분적 양보 속에 서서히 사그라들었지만, 그 밑바닥에 있던 생활불안과 불평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커〉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경찰차 창문 너머 불타는 도시를 보며 피투성이 얼굴로 웃는다. 우리가 그 장면에서 섬뜩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허구라서가 아니라 “어디선가 이미 시작된 현실의 한 조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묻고 싶다. 만약 당신이 오늘의 노란 조끼를 입게 된다면, 혹은 광대 가면을 쓴 군중 속에 서게 된다면, 그 분노를 단지 파괴로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무엇을 요구하고, 어떤 연대를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요구에 응답해야 할 자리에 있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먼저 바꾸려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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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회원국 상위·하위 10% 소득 비율
OECD Income inequality update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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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불평등의 원인 - 구조적 요인
World Bank South Asia Development Update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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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 러닝타임
Box Office Mojo Joker
노란 조끼 운동은 취약계층이 기후정책, 조세부담, 복지 축소의 부작용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구조를 명확히 드러냈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의 정책 입안 시 필수 고려 사항이다.
영화 〈조커〉처럼 구조적 불만이 익명성 뒤에서 극단적 폭력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경고다. 사회 안정을 위해서는 발언 기회와 공정성 보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좋은 취지의 정책도 설계 방식에 따라 약자에게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환경, 복지, 조세 정책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