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포박된 채 비행기에 실려 나가는 사진 한 장이, 한 나라의 정권 교체를 ‘사실’로 못 박아버리는 시대다. 2026년 1월 3일(현지시간) 미군의 기습 작전으로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가 체포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소셜미디어에 직접 공개하며 “마두로와 부인이 붙잡혀 국외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이어 마두로는 1월 5일 뉴욕 법정에서 “납치됐다”고 반발하며 무죄를 주장했고, 카라카스에는 ‘임시’라는 이름의 권력이 들어섰다.
여기서 논점은 ‘마두로의 죄’만이 아니다. 체포가 ‘사법 집행’인지 ‘군사 개입’인지, 누가 그 경계를 정하는지, 그리고 그 판단이 국제법과 헌정 질서 위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실제로 미 의회에서는 베네수엘라 추가 군사행동을 의회의 승인 없이 못 하게 하자는 결의안이 51 대 50으로 부결되며(부통령 캐스팅보트), 행정부의 권한을 둘러싼 균열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전쟁이 아닌 체포’라는 명명은 책임의 언어를 바꾸고, 정치적 비용을 다른 주체에게 전가한다.
이 사태를 곧장 떠올리게 하는 영화는 베네수엘라를 다루지 않으면서도, 권력이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조립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배리 레빈슨 감독의 〈웩 더 독〉(1997, 97분, 정치 풍자/블랙코미디)은 성추문에 몰린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알바니아 전쟁’을 만들어내는 스핀닥터와 할리우드 제작자의 합작을 그린다. 영화는 전쟁의 승패가 전장보다 편집실에서 결정되는 순간, “무엇이 진짜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진짜처럼 보이게 설계됐는가”가 정치의 중심이 된다고 선언한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각색상 후보에 올랐다.
베네수엘라 ‘체포 사진’이 던진 충격은 〈웩 더 독〉의 장면들과 겹친다. 영화에서 대중은 전쟁을 ‘겪는’ 것이 아니라 ‘시청’한다.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에서도 국제사회가 가장 먼저 소비한 것은 작전의 법적 근거가 아니라 “체포됐다”는 선언과 그에 걸맞은 이미지였다. 법률·국제규범·주권이라는 복잡한 층위는 한 줄의 게시물 뒤로 밀리고, 정당성은 절차가 아니라 연출의 완성도에 기대어 작동한다. 이미지가 먼저 질서를 만들고, 질서는 뒤늦게 근거를 호출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현실의 정치가 영화의 문법을 닮아가는 현장을 목격한다.
더 불길한 것은, 이 사건이 단지 한 국가의 권력 교체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제재 회피’ 혐의 등을 내세워 베네수엘라 연계 유조선을 연쇄적으로 나포하고, 석유 산업의 재편을 공공연히 압박하고 있다. 동시에 국제금융 질서도 ‘누가 베네수엘라 정부인가’를 인정해야만 움직인다며, 2019년 이후 멈춰 있던 IMF의 관계 복원 조건을 못 박았다(베네수엘라가 접근하지 못한 SDR 49억달러 규모 언급). 여기에 중국 연계 해킹 조직이 ‘베네수엘라 정국’ 이슈를 미끼로 한 피싱·악성코드를 유포했다는 보도까지 더해지며, 군사·금융·정보전이 하나의 패키지로 결합되는 양상이 드러난다.
결국 1월 첫째 주의 세계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권력은 이제 사건을 일으키는 동시에, 사건을 해석하는 화면까지 장악하려 든다.” 〈웩 더 독〉이 경고한 것은 가짜 전쟁 그 자체가 아니라, 진실이 ‘검증’이 아니라 ‘흥행’의 경쟁으로 밀려나는 구조였다. 우리는 ‘나쁜 지도자의 체포’에 환호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주권과 절차와 국제 규범이 훼손되는 장면을 함께 통과시킨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이 정의라고 믿는 장면은, 법의 얼굴인가, 아니면 카메라의 얼굴인가.

![[1월 1째 주 영화로 보는 세상] 체포 사진의 정치](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the_hurt_locker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