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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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째주 · 2026
[1월 셋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진실 앞에 선 한 사람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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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셋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진실 앞에 선 한 사람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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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1월 13일, 프랑스 파리의 일간지 《로로르(L'Aurore)》 1면에 두꺼운 활자로 인쇄된 제목 하나가 프랑스 전역을 뒤흔들었다. "나는 고발한다(J'Accuse...!)." 당대 프랑스 최고의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가 펠릭스 포르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의 제목이었다. 이 서한의 핵심은 유대인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에 군사 기밀을 팔았다는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아 남아메리카 기아나 해안의 악마 섬에 유배된 사건, 이른바 '드레퓌스 사건'의 부당함을 낱낱이 폭로하는 것이었다. 졸라는 군부가 증거를 조작했고, 진범인 에스테라지 소령을 의도적으로 무죄 방면했으며, 이 모든 과정의 배후에 반유대주의라는 뿌리 깊은 편견이 자리 잡고 있음을 조목조목 고발했다. 이 공개서한은 발행 당일 약 30만 부가 팔려나갔고, 프랑스 사회를 드레퓌스 옹호파와 반(反)드레퓌스파로 양분하는 거대한 정치적 균열을 일으켰다. 졸라는 그 대가로 명예훼손죄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박탈당한 채 영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그러나 이 한 편의 글은 단순한 법정 공방을 넘어, 국가 권력이 개인의 권리를 짓밟을 때 지식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인류에게 처음으로 던진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드레퓌스 사건이 던지는 구조적 질문은 백이십칠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첫째, 편견이 제도화될 때 정의는 어떻게 왜곡되는가의 문제다. 드레퓌스가 유죄 판결을 받은 핵심 이유는 증거가 아니라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에두아르 드뤼몽의 저서 《유대인의 프랑스(La France juive)》가 베스트셀러로 군림하고 있었고, 군부와 사법부, 언론까지 반유대주의의 자장 안에 놓여 있었다. 증거를 평가해야 할 군사법원은 드레퓌스에게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열람할 권리조차 주지 않은 채 비공개 재판으로 유죄를 확정했다. 이는 편견이 개인의 감정 차원을 넘어 법과 제도 속에 스며들면, 아무리 정교한 사법 체계라 하더라도 정의를 담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둘째, 다수가 침묵할 때 소수의 목소리가 갖는 의미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다. 졸라가 공개서한을 발표하기 전까지, 드레퓌스의 무고함을 주장한 사람은 그의 가족과 극소수의 지인뿐이었다. 군부의 권위 앞에서, 그리고 반유대주의라는 대중의 정서 앞에서, 대다수 시민과 지식인은 침묵을 택했다. 졸라의 행위가 혁명적이었던 까닭은 진실을 말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명성과 자유와 안전을 모두 걸고서 권력의 거짓에 맞섰다는 데 있다. 이 사건은 프랑스어에서 '지식인(intellectuel)'이라는 단어가 오늘날의 의미, 즉 공적 사안에 대해 양심적 발언을 하는 존재라는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기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은유적으로 가장 밀도 있게 형상화한 영화로 시드니 루멧 감독의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1957)을 꼽을 수 있다. 개봉 연도 1957년, 감독 시드니 루멧, 러닝타임 96분, 장르 법정 드라마이며, 제7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수상, 제30회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각색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는 빈민가 출신의 열여덟 살 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재판의 배심원 평결 과정을 다룬다. 열두 명의 배심원 중 열한 명이 유죄에 투표하지만, 건축가인 8번 배심원(헨리 폰다)만이 합리적 의심을 이유로 유일하게 무죄에 표를 던진다. 이후 그는 목격자 증언의 모순, 증거의 허점, 그리고 배심원들 내면에 도사린 편견을 하나씩 논리적으로 해체해 나간다. 특히 10번 배심원이 빈민가 출신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장면에서, 나머지 배심원들이 하나둘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연출은 편견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집단의 역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단 하나의 밀폐된 배심원실을 무대로, 정의와 편견, 용기와 동조라는 주제를 구술극에 가까운 밀도로 압축한다.

졸라와 8번 배심원 사이의 교차 지점은 놀라울 만큼 정밀하다. 우선 두 인물 모두 다수의 확신에 맞서는 '유일한 반대자'라는 구조적 위치를 공유한다. 졸라가 군부와 정부, 그리고 반유대주의에 물든 여론이라는 거대한 합의에 홀로 맞섰듯, 8번 배심원은 열한 명의 유죄 확신이라는 압도적 다수에 맞선다. 그러나 이들의 무기는 폭력이나 권위가 아니라, 증거에 대한 합리적 검토와 질문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졸라가 필적 감정의 부실함, 비공개 재판의 위법성, 진범 에스테라지에 대한 의도적 무죄 방면을 하나하나 지적했듯, 8번 배심원은 목격자의 시력 문제, 흉기의 보편성, 증언 시간의 물리적 불가능성을 차례로 밝혀낸다. 또한 두 서사 모두 편견이라는 보이지 않는 구조물이 정의를 가로막는 핵심 장애물로 기능한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반유대주의가 증거보다 강력한 유죄의 근거로 작동했듯이, 영화에서 10번 배심원의 슬럼 출신에 대한 계급적 혐오와 3번 배심원의 아들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개인적 분노가 객관적 판단을 대체한다. 결정적으로, 두 이야기의 결말 구조도 대칭을 이룬다. 졸라의 고발은 즉각적 승리가 아니라 기소와 망명이라는 대가를 치렀지만, 궁극적으로 드레퓌스의 복권(1906년)과 프랑스 사회의 자기 성찰로 이어졌다. 영화에서 8번 배심원의 고독한 싸움 역시 순탄치 않지만, 마침내 만장일치 무죄 평결이라는 정의의 회복으로 귀결된다. 두 서사는 공히 진실이 관철되기까지 반드시 시간과 고통이 수반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드레퓌스 사건과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결코 과거의 교훈에 머물지 않는다. 반유대주의 감시단체 ADL에 따르면, 2024년 미국에서 보고된 반유대주의 사건은 총 9,354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10년 전 대비 약 893퍼센트 증가한 수치다(ADL, 2025). 국제기자연맹 RSF의 2024년 연례 보고서는 전 세계적으로 550명의 언론인이 수감 중이며 이는 전년 대비 7퍼센트 증가한 수치라고 밝혔다(RSF, 2024). 편견에 기반한 혐오 범죄가 증가하고, 진실을 말하는 이들이 감옥에 갇히는 현실은 졸라가 127년 전 고발했던 바로 그 구조, 즉 권력이 편견을 도구로 삼아 진실을 억압하는 메커니즘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특히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 정보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편견을 강화하는 알고리즘과 확증 편향의 메커니즘은 오히려 '제도화된 편견'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1898년의 프랑스 군사법원이 비공개 재판으로 증거를 은폐했다면, 오늘날에는 가짜뉴스와 정보 조작이 공개된 공간에서 오히려 더 교묘하게 진실을 파묻는다. 8번 배심원이 밀폐된 방 안에서 동료들의 편견을 하나씩 해체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편견의 렌즈를 벗고 증거를 직시하려는 의지가 절실히 요구된다.

결국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와 8번 배심원의 "합리적 의심이 있습니다"는 동일한 문장의 서로 다른 번역이다. 두 문장 모두 다수의 합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편견에 균열을 내는 최소한의,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행위, 즉 '질문'에서 출발한다. 역사는 반복적으로 증명해왔다. 진실은 스스로 관철되지 않으며, 반드시 그것을 위해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된 누군가의 목소리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주변에서 다수의 합의 아래 묻히고 있는 진실은 없는가. 그리고 당신은 그 진실 앞에서 졸라처럼, 8번 배심원처럼, 자리에서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