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2월 21일, 런던의 한 인쇄소에서 스물세 쪽짜리 소책자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주의자동맹의 의뢰를 받아 집필한 『공산당 선언』이다.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첫 문장은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벌어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골을 단 한 줄로 응축했다. 출간 시점이 절묘했다. 불과 사흘 뒤인 2월 24일 파리에서 혁명의 불길이 치솟았고, 3월에는 밀라노와 베를린으로 번지며 '민족의 봄'이라 불리는 1848년 유럽 혁명이 대륙 전체를 휩쓸었다. 혁명 자체는 대부분 좌절됐지만, 이 소책자가 던진 질문은 좌절되지 않았다. 이후 20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돼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힌 정치 문헌이 된 이 선언문은 (중국인민대표대회 공식 자료, 2018), 단순한 정치 강령을 넘어 "부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구에게 돌아가며, 그 분배를 결정하는 권력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보편적 물음을 인류 앞에 놓았다. 178년이 지난 지금, 이 물음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첨예해졌다.
『공산당 선언』이 드러내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구조적 불평등의 자기 재생산 메커니즘에 관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가 필연적으로 부의 편중을 심화시킨다고 진단했다.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와 노동력만을 가진 자 사이의 비대칭은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에 의해 교정되기보다 오히려 확대된다는 것이 그의 핵심 논지였다. 물론 이 진단의 반론은 역사 속에서 무수히 제기됐고, 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는 마르크스의 처방전이 품었던 치명적 맹점을 드러냈다. 그러나 진단과 처방을 분리해서 볼 때, '부의 편중이 체제 내부의 논리에 의해 스스로 강화된다'는 구조적 관찰만큼은 여전히 유효한 논쟁의 축으로 남아 있다. 여기서 핵심적인 철학적 긴장이 발생한다. 불평등은 개인의 능력과 노력 차이가 빚어낸 자연스러운 결과인가, 아니면 시스템이 설계된 방식 그 자체가 특정 방향으로 부를 몰아가는 구조적 산물인가. 이 물음은 좌파와 우파라는 정치적 진영 이전에, 인간 사회의 작동 원리의 존재론적 질문이다. 우리가 속한 체제의 규칙은 누가 쓰는가, 그리고 그 규칙의 수혜자는 규칙을 쓰는 자와 얼마나 겹치는가. 선언문은 답을 제시했지만, 그 답의 유효성과 별개로 질문 자체의 무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이 구조적 물음을 가장 날카로운 공간적 은유로 풀어낸 영화가 있다. 스페인 감독 갈데르 가스텔루-우루티아의 「더 플랫폼」(2019년 개봉, 94분, 사회파 공상과학·공포)이다. 이 작품은 제44회 토론토국제영화제 미드나잇 매드니스 부문 관객상, 제52회 시체스영화제 최우수작품상·최우수관객상·최우수특수효과상·시민 케인상(주목할 감독상) 등 4관왕, 그리고 제34회 고야상 특수효과상을 수상했다. 줄거리는 이렇다. 수백 층으로 이루어진 수직 구조의 시설이 있다. 매달 수감자들은 무작위로 층이 배정되고, 꼭대기에서 한 장의 거대한 식탁이 내려온다. 음식은 처음부터 모든 수감자가 나누어 먹기에 충분한 양이지만, 위층 사람들이 탐욕스럽게 먹어 치우면 아래층에는 잔반조차 남지 않는다. 주인공 고렝은 자발적으로 이 시설에 들어왔다가 하층으로 배정되면서 체제의 잔혹한 논리를 온몸으로 경험한다. 그는 동료 트리마가시, 이마굴레와 함께 식탁에 남은 음식을 아래로 보내려는 시도를 하지만, 체제는 연대를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영화는 총 333층이라는 수직 공간을 통해 계급 구조를 물리적으로 가시화하며,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몇 층에 있는가,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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