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 17일 새벽,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공습했다. '사막의 폭풍' 작전이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응징이라는 명분이었고, CNN은 바그다드 상공의 미사일을 생중계했다. 이것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최초의 전쟁이었다. 미국인들은 거실에서 녹색 야간 화면을 보며 전쟁을 구경했다. 42일 만에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에서 철수했고, 미국은 승리를 선언했다.
걸프전쟁 당시 쿠웨이트 유전 화재, 1991년. 후퇴하는 이라크군이 700개 이상의 유정에 불을 질렀다 연기는 수개월간 하늘을 뒤덮었다 ⓒ US Marine Corps
전쟁은 빨리 끝났지만, 그 뒤에 남은 것은 복잡했다. 사담 후세인은 여전히 권좌에 있었고, 미국이 봉기를 부추긴 시아파와 쿠르드족은 후세인의 보복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승리의 이면에는 배신이 있었다. 미국은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은 채 철수했고, 이는 12년 뒤 이라크 전쟁의 씨앗이 되었다.
전쟁의 승자는 깃발을 꽂고 떠나지만, 전쟁터에 남은 사람들은 깃발 아래서 산다. 데이비드 오 러셀은 승리 뒤에 숨은 도덕적 질문을 정면으로 들이밀었다.
1999년, 데이비드 오 러셀은 Three Kings를 만들었다. 걸프전 직후, 종전 협정이 체결된 시점이 배경이다. 조지 클루니, 마크 월버그, 아이스 큐브가 연기한 세 명의 미군 병사가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약탈한 금괴를 찾아 나선다. 처음에는 탐욕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라크 민간인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영화의 방향이 바뀐다. 금괴를 가져갈 것인가, 사람들을 구할 것인가.
Three Kings (1999), 데이비드 오 러셀 감독. 조지 클루니와 마크 월버그가 이라크 사막에서 금괴를 운반하는 장면 러셀은 탈색된 필름과 과포화 색감으로 사막의 비현실성을 표현했다 ⓒ Warner Bros
러셀의 영화가 특별한 것은 전쟁 영화의 문법을 비틀기 때문이다. 총알이 인체에 들어가 장기를 파괴하는 과정을 CG로 보여주는 장면은 전쟁의 폭력을 추상에서 구체로 끌어내린다. 미군 병사가 이라크 포로를 심문하는 장면에서 포로는 묻는다. '미국은 왜 내 나라를 폭격하고서, 우리 대통령은 그대로 두었느냐.' 이 질문에 병사는 대답하지 못한다.
걸프전은 미국에 '깨끗한 전쟁'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정밀 유도 폭탄이 건물만 파괴하고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사상자 수는 낮았고, 전쟁 기간은 짧았다. 하지만 그것은 카메라가 비추는 쪽의 이야기였다. 이라크 민간인 사상자는 수만 명에 달했고, 열화우라늄탄의 후유증은 수십 년간 이어졌다.
Three Kings의 마지막에서 세 병사는 금괴 대신 이라크 난민을 이란 국경으로 데려간다. 이것은 미담이 아니라 자기모순의 고백이다. 전쟁을 시작한 나라의 병사가 전쟁의 피해자를 구하는 것. 러셀은 이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줄 뿐이다. 걸프전의 진짜 유산은 승리가 아니라 이 모순이다. 이기고도 해결하지 못한 것, 떠나면서 남겨둔 것. 그것이 1991년 1월 이후 중동의 역사를 규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