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8월 15일,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카슈미르는 갈라진 운명의 땅이 됐다. 하리 싱 마하라자가 통치하던 이 지역은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고, 결국 인도에 편입됐다. 그러나 무슬림이 다수인 이 지역의 주민들은 자결권을 요구했고, 이는 곧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1989년부터 본격화된 무장 봉기와 인도군의 진압 과정에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1990년대 초, 인도군의 '실종 작전'으로 8,000명 이상의 카슈미르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군사특별권한법(AFSPA) 아래에서 군인들은 민간인을 임의로 구금하고 심문할 수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고문과 초법적 처형이 일상화됐다.
카슈미르 분쟁과 강제 실종, 1990년대. 인도 통치하 카슈미르에서 수천 명이 강제 실종됐으며, 가족들이 실종자의 사진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 Amnesty International
카슈미르 분쟁은 단순한 영토 다툼이 아니라 정체성과 자결권을 둘러싼 복잡한 갈등이다. 인도 정부는 카슈미르를 '불가분의 영토'로 간주하며 분리주의 운동을 테러리즘으로 규정했다. 반면 카슈미르인들은 자신들의 투쟁을 자유를 향한 정당한 저항으로 여겼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폭력의 악순환을 낳았다. 군대의 과도한 진압은 더 많은 젊은이들을 무장 투쟁으로 내몰았고, 무장 단체의 공격은 다시 군사적 대응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됐다. 국제사회는 이 지역의 인권 상황에 우려를 표명했지만, 인도는 이를 내정 간섭으로 일축했다. 카슈미르는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된 지역 중 하나가 됐고, 주민들은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아슈빈 쿠마르 감독의 No Father in Kashmir는 이러한 카슈미르의 비극을 한 소녀의 시선으로 조명한다. 영국에서 자란 16살 나디아는 어머니와 함께 카슈미르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만난 또래 소년 마지드와 함께 실종된 아버지들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나디아의 아버지는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혀 죽었고, 마지드의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두 아이는 진실을 찾아 나서지만, 그들이 마주한 것은 거대한 침묵의 벽이었다. 조이타 소랑키와 샤르와리 카네카르의 섬세한 연기는 순수함을 잃어가는 청춘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영화는 정치적 메시지보다는 인간적 비극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카슈미르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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