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2월 20일 새벽, 미군 2만 7천여 명이 파나마로 진입했다. '저스트 코즈 작전'으로 명명된 이 침공의 목표는 단 한 명, 파나마의 실권자 마누엘 노리에가였다. 한때 CIA의 충실한 협력자였던 그는 어느새 미국의 눈엣가시가 되어 있었다. 노리에가는 프랑스 대사관으로 도피했고, 미군은 록 음악을 최대 볼륨으로 틀어 그를 괴롭혔다. 열흘간의 심리전 끝에 1990년 1월 3일, 그는 마침내 투항했다. 중남미 소국의 독재자가 초강대국의 군사력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다.
파나마 독재자 노리에가.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노리에가의 몰락은 냉전 시대 미국 외교정책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1983년부터 파나마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그는 CIA의 정보원으로 활동하며 니카라과 반군을 지원했다. 마약 밀매와 인권 탄압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그를 용인했다. 하지만 소련이 무너지고 냉전이 끝나자 상황은 달라졌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노리에가는 버려졌고, 미국은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으로 주권국가를 침공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파나마 민간인이 희생되었지만, 국제사회의 비난은 미미했다. 힘의 논리가 정의를 압도하는 국제정치의 냉혹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존 부어만 감독의 The Tailor of Panama는 노리에가 정권 몰락 이후의 파나마를 배경으로 한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연기한 앤디 오스나드는 파나마로 좌천된 영국 정보원이다. 그는 제프리 러쉬가 맡은 재단사 해리 펜델을 포섭해 정보를 캐낸다. 문제는 펜델이 돈을 위해 거짓 정보를 만들어낸다는 것. 존재하지 않는 반정부 조직, 가상의 음모론이 진실인 양 보고되고, 이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부어만은 그레이엄 그린의 원작을 충실히 영화화하면서도, 첩보물의 관습을 비틀어 권력과 정보의 관계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The Tailor of Panama (2001), 존 부어만 감독. ⓒ Production Company
노리에가의 실제 역사와 영화 속 허구는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 두 이야기 모두 정보의 조작과 왜곡이 핵심이다. 노리에가는 CIA에 정보를 팔았고, 동시에 쿠바와 소련에도 정보를 제공했다. 영화 속 펜델처럼 그는 각자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더 중요한 것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대하는 태도다. 미국이 노리에가를 이용하고 버린 것처럼, 영화 속 영국 정보부는 파나마를 그저 체스판의 말로만 본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자국의 이익만이 중요할 뿐이다. 부어만은 이런 국제정치의 위선을 블랙코미디의 형식으로 고발한다.
노리에가 사건으로부터 35년이 흐른 지금, 강대국의 개입주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에서 우리는 비슷한 패턴을 목격했다. 독재자를 지원하다가 필요 없어지면 제거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다. 정보기관은 여전히 편향된 정보로 정책 결정자를 호도하고, 언론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전달한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권력의 작동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SNS와 가짜뉴스의 시대에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졌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펜델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진실인 양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파나마 운하를 지나는 거대한 선박들처럼, 역사는 느리지만 끊임없이 흐른다. 노리에가는 미국 감옥에서 복역 후 프랑스로 인도되었고, 2017년 파나마에서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그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독재의 상처, 주권 침해의 기억, 그리고 국제정치의 씁쓸한 교훈이다. The Tailor of Panama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믿는 진실은 과연 진실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우리에게 믿게 하고 싶은 이야기일 뿐인가.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펜들의 재단 솜씨가 아니라 오스나드의 거짓말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아닐까?

![[2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노리에가의 실제 역사와 영화 속 허구는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the_tailor_of_panama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