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3월 24일 저녁 6시 25분,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의 작은 병원 성당.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 대주교가 미사를 집전하던 중, 성당 뒤편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붉은 폭스바겐에서 내린 정체불명의 사수가 쏜 총탄은 제단 위에서 성체를 들어올리던 로메로의 심장을 관통했다. 62세의 대주교는 "하느님, 용서하소서"라는 말을 남기고 쓰러졌다.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상징이자 엘살바도르 민중의 목소리였던 그의 죽음은 12년간 7만 5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내전의 서막이었다.
엘살바도르 오스카르 로메로 대주교 암살, 1980년 3월 24일. 미사 집전 중 군부 암살단의 총에 맞아 순교한 엘살바도르의 해방신학 지도자. ⓒ AFP
로메로 대주교의 암살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의 죽음이 아니었다. 1977년 대주교로 임명될 당시만 해도 보수적이고 온건한 성직자로 평가받던 그는 친구인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가 군부에 의해 살해당한 후 급진적으로 변모했다. 매주 일요일 그의 설교는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방송됐고, 군부독재와 과두지배층의 폭력을 고발하는 그의 목소리는 엘살바도르 민중에게 희망의 등대가 됐다. 1980년 2월, 그는 미국 카터 대통령에게 엘살바도르 군부의 원조 중단을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암살 하루 전, 그는 군인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고통받는 이 민중의 이름으로 간청합니다. 탄압을 멈추십시오!"라고 호소했다.
1989년 존 듀이건 감독의 Romero는 로메로 대주교의 마지막 3년을 그린 전기영화다. 라울 훌리아가 로메로 역을 맡아 온순한 성직자에서 예언자적 순교자로 변모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영화는 1977년 대주교 임명식부터 1980년 암살까지의 여정을 따라가며, 민중의 고통 앞에서 침묵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의 양심적 각성을 보여준다. 특히 빈민가에서 군부에 의해 학살당한 시신들 앞에서 무릎 꿇는 로메로의 모습, 성당에 난입한 군인들 앞에서 성체를 높이 들어올리며 맞서는 장면은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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