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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째주 · 2024
[4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와 역사는 권력에 맞선 개인의 용기라는 주제에서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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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와 역사는 권력에 맞선 개인의 용기라는 주제에서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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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3월 24일 저녁 6시 25분,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의 작은 병원 성당.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 대주교가 미사를 집전하던 중, 성당 뒤편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붉은 폭스바겐에서 내린 정체불명의 사수가 쏜 총탄은 제단 위에서 성체를 들어올리던 로메로의 심장을 관통했다. 62세의 대주교는 "하느님, 용서하소서"라는 말을 남기고 쓰러졌다.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상징이자 엘살바도르 민중의 목소리였던 그의 죽음은 12년간 7만 5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내전의 서막이었다.

역사 사건

엘살바도르 내전 암살.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로메로 대주교의 암살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의 죽음이 아니었다. 1977년 대주교로 임명될 당시만 해도 보수적이고 온건한 성직자로 평가받던 그는 친구인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가 군부에 의해 살해당한 후 급진적으로 변모했다. 매주 일요일 그의 설교는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방송되었고, 군부독재와 과두지배층의 폭력을 고발하는 그의 목소리는 엘살바도르 민중에게 희망의 등대가 되었다. 1980년 2월, 그는 미국 카터 대통령에게 엘살바도르 군부에 대한 원조 중단을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암살 하루 전, 그는 군인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고통받는 이 민중의 이름으로 간청합니다. 탄압을 멈추십시오!"라고 호소했다.

1989년 존 듀이건 감독의 Romero는 로메로 대주교의 마지막 3년을 그린 전기영화다. 라울 훌리아가 로메로 역을 맡아 온순한 성직자에서 예언자적 순교자로 변모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영화는 1977년 대주교 임명식부터 1980년 암살까지의 여정을 따라가며, 민중의 고통 앞에서 침묵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의 양심적 각성을 보여준다. 특히 빈민가에서 군부에 의해 학살당한 시신들 앞에서 무릎 꿇는 로메로의 모습, 성당에 난입한 군인들 앞에서 성체를 높이 들어올리며 맞서는 장면은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꼽힌다.

영화 스틸

Romero (1989), 존 듀이건 감독. ⓒ Production Company

영화와 역사는 권력에 맞선 개인의 용기라는 주제에서 교차한다. 로메로 대주교가 총탄에 쓰러지는 순간과 영화 속 라울 훌리아가 연기하는 죽음의 장면은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한 개인이 거대한 폭력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영화는 로메로의 선택이 단순한 영웅주의가 아닌, 신앙과 양심의 필연적 귀결이었음을 보여준다. 그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였다. 엘살바도르 민중은 그의 장례식에서 "로메로는 살아있다!"고 외쳤고, 그 외침은 12년의 내전을 거쳐 마침내 평화협정으로 이어졌다.

로메로 대주교가 암살당한 지 44년이 지난 지금, 그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를 성인으로 시성했고, 엘살바도르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불의에 맞서는 이들이 그의 이름을 부른다. 영화 Romero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투쟁을 비추는 거울이다. 홍콩의 민주화 시위,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저항, 이란의 여성 인권 운동 속에서 우리는 로메로의 정신을 목격한다. 권력의 폭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용기, 약자의 편에 서는 선택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다.

로메로 대주교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죽더라도 엘살바도르 민중 안에서 다시 부활할 것이다."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총탄은 그의 육신을 쓰러뜨렸지만 정신은 죽이지 못했다. 영화는 묻는다. 우리 시대의 로메로는 누구인가? 불의한 권력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침묵의 공범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비록 작더라도 진실의 목소리가 될 것인가? 역사는 반복되고, 선택의 순간은 늘 우리 앞에 놓여있다. 당신은 오늘, 어디에 서 있는가?

공식 예고편

Romero (1989) — 존 듀이건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