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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째주 · 2024
[4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내부고발자들은 여전히 탄압받고, 권력은 여전히 진실을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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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내부고발자들은 여전히 탄압받고, 권력은 여전히 진실을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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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다. 2,977명이 목숨을 잃은 이 참극은 미국 외교정책의 분수령이 되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즉각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침공이 시작됐다.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명분으로 한 이 전쟁은 훗날 거짓으로 판명됐다. CIA 요원 밸러리 플레임의 신분 노출 사건은 이 시대가 얼마나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권력이 진실을 조작하고, 반대 의견을 탄압하던 암울한 시기였다.

역사 사건

9/11 이후 미국 외교.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9/11 이후 미국은 '예방적 전쟁' 독트린을 채택했다. 위협이 현실화되기 전에 먼저 공격한다는 이 논리는 국제법의 근간을 흔들었다. 유엔 안보리 결의 없이 진행된 이라크 전쟁은 다자주의의 종말을 알렸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UN에서 흔들었던 작은 유리병은 거짓의 증거였다. 언론은 애국주의에 매몰되어 비판적 시각을 잃었고, 반전 목소리는 반미로 매도됐다.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미국이 오히려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는 아이러니가 펼쳐졌다.

더그 라이먼 감독의 Fair Game은 실제 CIA 요원 밸러리 플레임 사건을 다룬 영화다. 나오미 왓츠가 연기한 플레임은 핵무기 전문가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추적하던 베테랑 요원이었다. 그녀의 남편 조셉 윌슨(숀 펜)은 전직 외교관으로,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명분에 의문을 제기했다. 영화는 권력이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 개인을 파괴하는지 차분하게 추적한다. 왓츠와 펜의 절제된 연기는 거대한 국가 권력 앞에 선 개인의 무력함과 용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영화 스틸

Fair Game (2010), 더그 라이먼 감독. ⓒ Production Company

9/11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와 플레임 사건은 놀랍도록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둘 다 공포를 기반으로 한 권력의 폭주였고, 진실보다 명분이 우선했다.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시한 이라크 침공과 내부 고발자를 탄압한 플레임 사건은 동일한 권위주의적 사고의 산물이었다. 영화는 거시적 외교정책의 실패가 어떻게 미시적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국가 안보라는 미명 하에 정의와 진실이 희생되는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20년이 지난 지금, 9/11의 유산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실패는 미국 외교의 신뢰성을 크게 훼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국제질서는 다시 혼란에 빠졌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졌다. 소셜 미디어 시대의 가짜뉴스는 당시 대량살상무기 조작보다 더 교묘하다. 내부고발자들은 여전히 탄압받고, 권력은 여전히 진실을 두려워한다. 플레임 사건이 보여준 민주주의의 취약성은 오늘날 더욱 심화되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9/11 이후의 미국과 Fair Game이 그린 권력의 오만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주제다. 국가 안보와 개인의 자유, 집단의 공포와 이성적 판단 사이에서 우리는 늘 갈등한다. 영화 속 플레임 부부가 겪은 고통은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의 시험대였다. 진실을 말하는 용기가 처벌받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 또 다른 9/11이, 또 다른 플레임이 나타날 때 우리는 과연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공식 예고편

Fair Game (2010) — 더그 라이먼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