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와 역사적 사건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구조를 공유한다
세계사 · 영화차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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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1984년 인도 보팔에서 발생한 유니온 카바이드 독가스 참사를 다룬 영화 'Bhopal: A Prayer for Rain'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 기업의 이윤 추구와 제3세계 빈민의 생명이 충돌하는 구조적 폭력을 조명한다. 4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보팔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으며, 개발도상국의 산업재해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
1984년 12월 3일 새벽,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 주의 보팔에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미국계 다국적 기업 유니온 카바이드의 살충제 공장에서 치명적인 독가스 메틸 이소시아네이트(MIC) 40톤이 유출돼 도시 전체를 뒤덮었다. 그날 밤 3,787명이 즉사했고, 이후 수만 명이 호흡기 질환과 실명, 암으로 고통받았다. 공장 주변의 빈민가에 살던 사람들은 잠결에 독가스를 들이마시며 생을 마감했고, 살아남은 이들은 평생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워런 앤더슨 회장이 이끄는 유니온 카바이드는 사고 직후 인도 정부와 4억 7천만 달러의 합의금을 지불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보팔 가스 참사, 1984년 12월 3일. 인도 보팔의 유니언 카바이드 살충제 공장에서 유독가스가 누출돼 최소 3,787명이 사망했다. ⓒ Raghu Rai / Magnum Photos
보팔 참사는 단순한 기술적 실패가 아니었다. 1970년대 녹색혁명의 물결 속에서 인도 정부는 농약 생산을 장려했고, 유니온 카바이드는 값싼 노동력과 느슨한 규제를 이용해 보팔에 공장을 세웠다. 사고 전부터 공장은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 장치를 하나둘 제거했고, 숙련된 엔지니어들을 해고했으며, 위험물질 보관 기준을 무시했다. 인도 정부 역시 외국 자본 유치에 급급해 안전 점검을 소홀히 했다. 제3세계의 값싼 생명을 담보로 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어두운 이면이 보팔에서 폭발한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목숨은 기업의 이윤 추구 앞에서 숫자로만 계산됐다.
라비 쿠마르 감독의 Bhopal: A Prayer for Rain은 참사 30년 후인 2014년에 개봉한 영화로, 그날의 비극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마틴 쉰이 연기한 워런 앤더슨은 냉혹한 자본가의 전형으로, 칼 펜이 연기한 현지 언론인 모트와라는 진실을 알리려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사고 당일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하게 포착하면서도, 희생자들의 일상과 꿈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특히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려던 노동자 딜립의 이야기는 산업화의 희망이 어떻게 절망으로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쿠마르 감독은 스펙터클한 재난 영화가 아닌,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비극의 본질을 응시한다.
보팔 참사와 Bhopal: A Prayer for Rain이 공유하는 서사 구조는 '가해자의 부재'다. 역사적 사건에서 워런 앤더슨 회장은 사고 직후 인도에서 도주해 미국에서 여생을 보냈고, 끝내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영화에서 마틴 쉰이 연기한 앤더슨은 보팔의 참상을 숫자로만 인식하는 냉혹한 자본가로 그려진다. 가해자는 사라지고 피해자만 남는 이 구조는, 다국적 기업의 제3세계 착취가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불의의 패턴이다. 기업은 이윤을 본국으로 가져가고, 재앙은 현지에 남긴다.
한국 사회는 산업재해의 아픔을 깊이 알고 있다. 2018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사건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고용노동부의 2023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한국에서 연간 산업재해 사망자는 약 2,000명에 달하며, 이 중 하청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위험은 외주화되고, 이윤은 원청이 가져가는 구조는 보팔에서 유니온 카바이드가 안전 비용을 줄여 이윤을 극대화한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40년 전 인도의 비극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팔의 독가스가 가장 먼저 스며든 곳은 공장 주변의 빈민가였다. 재앙은 언제나 가장 약한 고리를 먼저 덮친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보팔의 토양과 지하수는 오염돼 있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2세대, 3세대 피해자들이 있다. 값싼 제품을 소비하는 우리의 일상은,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유지되고 있지는 않은가.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역사의 반복성
40년 전 보팔 참사의 구조적 원인이 여전히 개발도상국의 산업재해에서 반복되고 있다. 기업의 규제 회피와 정의의 부재는 과거 문제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2
소비자 책임
선진국에서 누리는 값싼 제품의 이면에 제3세계 노동자들의 희생이 숨겨져 있다. 글로벌 공급망 속 우리 책임을 성찰하도록 촉구한다.
3
환경정의의 부재
기후위기 시대 환경정의를 외치지만, 가난한 국가와 사람들은 여전히 더 많은 환경 위험에 노출돼 있다. 불평등한 전 지구적 구조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