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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로메르의 영화와 누벨바그 운동은 모두 '선택'의 문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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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로메르의 영화와 누벨바그 운동은 모두 '선택'의 문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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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1969년 칸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에릭 로메르의 '모드와의 밤'은 누벨바그 운동과 함께 '선택'의 문제를 핵심적으로 다룬다. 로메르는 정치적 격정보다 일상의 도덕적 딜레마에 집중하며, 대화와 침묵을 통해 인간 조건의 복잡성을 철학적으로 탐구했다.

1969년 5월, 칸 영화제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새로운 목소리를 목격했다. 에릭 로메르의 Ma Nuit chez Maud가 황금종려상 후보에 오른 것이다. 이미 10년 전 프랑수아 트뤼포가 Les Quatre Cents Coups로 칸을 뒤흔든 이래, 장 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 클로드 샤브롤과 함께 '카이에 뒤 시네마' 비평가 출신들이 프랑스 영화계를 혁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메르는 조금 달랐다. 1920년생인 그는 동료들보다 열 살 가까이 나이가 많았고, 그의 영화는 정치적 격정보다는 일상의 도덕적 딜레마에 천착했다. 누벨바그가 기존 영화 문법을 파괴하며 거리로 나섰다면, 로메르는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내밀한 대화 속으로 들어갔다.

역사 사건

프랑스 누벨바그 운동, 1958–1960년대. 카이에 뒤 시네마 비평가들이 영화감독으로 전환하며 기존 영화 문법을 혁신한 시기의 파리 촬영 현장. ⓒ Cahiers du Cinéma

누벨바그는 단순한 영화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후 프랑스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맞물려 있었다. 1950년대 말, 드골의 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 프랑스는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지만,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위선과 관습에 반발했다. 영화계에서도 '아버지의 영화'라 불리던 스튜디오 시스템과 문학적 각색 위주의 '퀄리티 시네마'의 거부가 일어났다. 누벨바그 감독들은 16mm 카메라를 들고 파리 거리로 나가 즉흥적이고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그들에게 영화는 소설이나 연극의 번안물이 아니라 고유한 예술 형식이었고, 감독은 작가였다. 이러한 '작가주의' 이론은 할리우드 장르 영화들을 재평가하는 동시에, 유럽 영화의 새로운 미학을 탄생시켰다.

My Night at Maud's는 로메르의 '여섯 가지 도덕 이야기' 연작 중 세 번째 작품이다. 클레르몽페랑의 엔지니어 장(장루이 트랭티냥)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성당에서 본 금발의 여인 프랑수아즈와 결혼하리라 마음먹는다. 하지만 옛 친구 비달을 만나 이혼녀 모드(프랑수아즈 파비앙)의 집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 세 사람은 파스칼의 내기, 신앙과 확률, 사랑과 도덕에 대해 밤새 토론한다. 모드는 장을 유혹하지만, 그는 끝내 그녀와 잠자리를 갖지 않는다. 로메르는 긴 대화 장면들을 통해 인물들의 심리적 긴장을 포착한다. 흑백 화면 속에서 배우들의 미묘한 표정과 몸짓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특히 프랑수아즈 파비앙의 자연스럽고 지적인 연기는 모드라는 복잡한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영화 스틸

프랑스 누벨바그와 에릭 로메르의 Ma Nuit chez Maud가 교차하는 지점은 '선택의 자유와 그 한계'라는 철학적 주제다. 트뤼포와 고다르가 영화 문법 자체를 혁파한 것처럼, 로메르는 도덕적 선택의 영역에서 혁명을 시도했다. 영화 속 장은 파스칼의 내기를 빌려 신앙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결국 그의 선택은 자유 의지의 산물인가, 아니면 사회적 관습과 종교적 규범에 의해 이미 결정된 것인가. 로메르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 자체가 영화의 목적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선택의 자유'라는 화두는 세대를 관통하는 핵심 의제가 됐다. 통계청의 2023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결혼 필수 인식은 50% 아래로 떨어졌고, 출생률은 0.72명으로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 이전 세대가 당연시하던 결혼, 출산, 취업이라는 생애 경로가 더 이상 '정상'이 아닌 시대가 됐다.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우리의 취향을 결정하고, 소셜미디어가 우리의 의견을 형성하는 디지털 시대에, 진정한 자유 의지란 무엇인가. 로메르가 1969년에 던진 질문은 2024년 한국 사회에서 더욱 절실해졌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그 선택이 정말 우리 자신의 것인가.

누벨바그의 감독들은 기성 영화의 문법을 거부하고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그 혁명은 영화에만 머물지 않았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관습을 의심하고 자신만의 선택을 하라는 외침이었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취향을 추천하고, 빅데이터가 소비를 유도하는 시대에, 우리에게 남은 진정한 선택이란 무엇인가.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누벨바그의 철학적 재해석

기사는 누벨바그 운동을 단순한 영화 기법 혁신이 아닌 전후 프랑스 사회의 정신적 변화로 해석하며, 로메르를 통해 그 심층적 의미를 드러낸다.

2
선택의 자유란 무엇인가

영화 제작 방식부터 도덕적 판단까지 모든 차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도, 완전히 결정돼 있지도 않은' 선택의 역설을 탐구하는 철학적 질문을 제시한다.

3
현대성과의 연결고리

1960년대 누벨바그를 향한 질문이 넷플릭스, 알고리즘, 스마트폰 시대에도 유효함을 보여주며, 기술 발전 속에서 진정한 자유 의지 문제가 여전히 핵심임을 강조한다.

공식 예고편

My Night at Maud's (1969) — 에릭 로메르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