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6월 27일, 우루과이의 민주주의는 군화발 아래 짓밟혔다. 후안 마리아 보르다베리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군부와 손잡으면서 시작된 독재는 12년간 지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수천 명의 시민들이 고문당하고, 실종되고, 투옥되었다. 그중에서도 투파마로스 도시 게릴라 조직의 지도자들인 호세 무히카, 마우리시오 로센코프, 엘레우테리오 페르난데스 우이도브로는 가장 가혹한 처우를 받았다. 그들은 12년 동안 독방에 갇혀 인간의 한계를 시험당했다. 1985년 3월 1일,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루과이는 비로소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우루과이 군부독재 극복.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우루과이의 군부독재는 남미 전체를 휩쓸었던 콘도르 작전의 일환이었다. 냉전 시대 미국의 묵인 아래, 칠레의 피노체트, 아르헨티나의 비델라와 함께 우루과이 군부는 좌익 세력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시민사회를 억압했다. 작은 나라 우루과이에서 벌어진 탄압은 그 규모에 비해 더욱 치밀하고 잔인했다. 인구 대비 정치범 수는 남미에서 가장 높았고, 고문 기술은 체계적으로 발전했다. 군부는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을 파괴하는 데 주력했다. 빛도 소리도 없는 독방에서, 인간은 서서히 자아를 잃어갔다.
알바로 브레흐네르 감독의 A Twelve-Year Night는 이 암흑기를 정면으로 다룬다. 영화는 호세 무히카를 비롯한 세 명의 정치범이 12년간 겪은 고립과 고통을 따라간다. 안토니오 데 라 토레, 치노 다린, 알폰소 토르트가 연기한 세 주인공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극한의 상황에 대응한다. 누군가는 환각에 시달리고, 누군가는 침묵으로 버티며, 누군가는 상상력으로 현실을 견딘다. 감독은 과도한 감상주의를 배제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잔혹함을 응시한다.
A Twelve-Year Night (2018), 알바로 브레흐네르 감독. ⓒ Production Company
역사와 영화가 만나는 지점은 '시간'이다. 12년이라는 시간은 한 인간의 청춘을 통째로 앗아갈 만큼 길고,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질식시킬 만큼 무거운 시간이다. 영화는 이 시간의 무게를 독방의 침묵과 어둠으로 형상화한다. 벽에 손톱으로 새긴 날짜들, 상상 속 대화로 채워지는 고독,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줄기에 매달리는 절박함. 우루과이가 겪은 12년의 독재는 세 정치범의 12년 밤으로 응축된다. 개인의 고통이 곧 국가의 상처가 되는 순간이다.
호세 무히카는 훗날 우루과이의 대통령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리며, 월급의 90%를 기부하고 낡은 폭스바겐을 몰고 다녔던 그는 12년의 고립이 가르쳐준 교훈을 잊지 않았다. 권력의 본질, 인간의 존엄, 자유의 가치를 뼈저리게 체득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겸손이었다. 우루과이는 군부독재의 상처를 딛고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났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통해 과거를 직시하고, 기억의 의무를 다했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 밝게 빛난다고 했던가. 우루과이의 12년 밤은 끝났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권력은 언제나 절대화를 꿈꾸고, 자유는 끊임없이 도전받는다. A Twelve-Year Night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과연 그 어둠의 시간들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민주주의라는 빛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깨어있는가?

![[7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역사와 영화가 만나는 지점은 '시간'이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a_twelve_year_night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