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10월 1일 새벽,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육군 장성 6명이 납치되어 살해되었다. '9·30 운동'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수하르토 소장이 주도한 반공 쿠데타의 서막이었다. 이후 6개월간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50만에서 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민간인이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학살당했다. 수마트라 북부의 메단, 자바의 반둥과 수라바야, 발리의 덴파사르까지, 열대의 섬나라는 피로 물들었다. 가해자들은 군인뿐만이 아니었다. 판차실라 청년단, 안소르 같은 준군사조직의 민간인들이 이웃을 살해하는 데 앞장섰다. 그들은 낫과 몽둥이로 사람을 죽였고, 시신을 강에 버리거나 집단 매장했다.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장이 시작된 것이다.
인도네시아 학살 1965.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이 학살은 냉전 체제하에서 벌어진 정치적 제노사이드였다. 수카르노 대통령의 '제3세계 비동맹' 노선은 미국과 소련 양 진영에게 불안 요소였고, 특히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의 성장은 서방 세계를 긴장시켰다. 수하르토는 이런 국제정세를 교묘히 이용했다. 9·30 운동을 공산당의 쿠데타 기도로 규정하고, 이를 명분으로 PKI와 연관된 모든 이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미국 CIA는 공산주의자 명단을 제공했고, 서방 언론은 학살을 침묵으로 묵인했다. 32년간 지속된 수하르토의 '신질서' 체제는 이 피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학살 이후의 침묵이었다. 가해자들은 처벌받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공산주의자 가족'이라는 낙인 속에서 숨죽여 살아야 했다. 인도네시아 사회는 집단적 기억상실증에 빠져들었다.
2012년, 덴마크 출신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충격적인 다큐멘터리 The Act of Killing을 발표했다. 이 영화는 1965년 학살의 가해자들, 특히 메단 지역에서 1,000명 이상을 살해했다고 자랑하는 안와르 콩고를 주인공으로 한다. 오펜하이머는 독특한 접근법을 택했다. 가해자들에게 자신들이 저지른 살인을 좋아하는 영화 장르로 재연해보라고 제안한 것이다. 안와르와 그의 동료들은 신나게 응했다. 그들은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 뮤지컬, 서부극 스타일로 고문과 살인 장면을 재현했다. 철사로 목을 조르는 방법, 머리를 때려 죽이는 기술을 자랑스럽게 시연했다. 영화는 이 초현실적인 재연 과정과 가해자들의 일상을 교차하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광경을 펼쳐 보인다.
The Act of Killing (2012),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 Production Company
오펜하이머의 영화가 포착한 것은 단순한 과거의 만행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폭력이었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었고, 자신들의 행위를 영웅적 애국 행동으로 미화했다. 이는 1965년 학살이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사회를 지탱하는 구조적 폭력의 토대임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안와르는 점차 불안해한다. 재연을 거듭할수록 악몽이 늘어나고, 마침내 자신이 피해자 역할을 맡았을 때 구토하며 무너진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참회일까? 오펜하이머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가해자가 주인공인 이 영화를 보는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방관자인가, 공모자인가, 아니면 잠재적 피해자인가?
2024년 현재,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1965년의 유령과 씨름하고 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진상 규명을 약속했지만 군부와 이슬람 보수 세력의 반발로 진전이 없다. 학살 생존자들은 80대가 넘었고, 가해자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까? 그렇지 않다. 화해되지 않은 과거는 유령처럼 떠돌며 현재를 잠식한다. 최근 파푸아에서 일어나는 인권 탄압,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폭력, 민주주의의 후퇴는 모두 1965년의 그림자 속에서 일어난다. 한국의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제주 4·3,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 5·18의 기억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가르고 있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사회는 같은 폭력을 반복할 운명이다.
역사는 망각과의 싸움이다. The Act of Killing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망각이 얼마나 의도적이고 조직적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가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들려주는 사회, 피해자들이 침묵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정의란 가능한가? 인도네시아 작가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는 "침묵은 동의"라고 했다. 그러나 때로 침묵은 생존의 전략이기도 하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말할 수 있고, 누가 들을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듣고 있는가, 아니면 듣는 척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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