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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째주 · 2024
[7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보어전쟁은 근대 전쟁사의 분수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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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보어전쟁은 근대 전쟁사의 분수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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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10월 11일, 남아프리카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국이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며 제2차 보어전쟁이 시작되었다. 네덜란드계 농민의 후손인 보어인들과 대영제국 사이에서 벌어진 이 전쟁은 3년간 지속되며 45만 명의 영국군과 8만 8천 명의 보어군이 맞섰다. 영국의 명장 키치너 경은 보어 게릴라들을 제압하기 위해 민간인 수용소를 설치했고, 그곳에서 2만 8천 명의 보어 여성과 아이들이 죽어갔다. 금과 다이아몬드로 가득한 남아프리카 땅을 차지하려는 제국의 탐욕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역사 사건

제2차 보어전쟁.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보어전쟁은 근대 전쟁사의 분수령이었다. 소총으로 무장한 보어 민병대는 기동력과 지형 이해를 바탕으로 정규군에 맞섰고, 영국군은 초반에 연이은 패배를 당했다. 이에 영국은 초토화 작전과 강제 수용소라는 극단적 수단을 동원했다. 전쟁은 1902년 5월 베레이니잉 조약으로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제국주의의 잔혹성은 20세기 반식민 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특히 간디가 이 전쟁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하며 목격한 인종차별과 폭력은 그의 비폭력 저항 사상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사이 엔드필드 감독의 Zulu는 1879년 줄루 전쟁의 로크스 드리프트 전투를 다룬 영화다. 150명의 영국군이 4천 명의 줄루 전사들의 공격을 막아낸 실화를 바탕으로, 스탠리 베이커와 마이클 케인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제국주의적 영웅담을 넘어 전쟁의 부조리와 문화 충돌의 비극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특히 줄루 전사들의 전투 의식과 노래, 그들의 용맹함을 존중하는 시선이 인상적이다. 붉은 군복의 영국군과 검은 피부의 줄루 전사들이 충돌하는 장면은 시각적으로 압도적이면서도 깊은 비애를 담고 있다.

영화 스틸

Zulu (1964), 사이 엔드필드 감독. ⓒ Production Company

보어전쟁과 Zulu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제국과 토착민의 충돌을 다룬다. 보어인들이 영국에 맞서 싸운 것처럼, 줄루족도 침략자에 맞서 자신들의 땅을 지키려 했다. 두 사건 모두에서 기술적 우위를 가진 영국군은 초반에 고전했고, 토착민들의 전술과 정신력을 과소평가한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결국 제국의 압도적인 화력과 자원 앞에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공통점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로크스 드리프트의 승리는 제국의 관점에서 본 영웅담이지만, 동시에 그 승리의 이면에 깔린 비극을 암시한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강대국과 약소국, 중심부와 주변부의 불균형 속에서 살고 있다. 경제적 신식민주의는 과거의 군사적 점령을 대체했고, 문화적 헤게모니는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보어전쟁이 남긴 인종 갈등은 아파르트헤이트로 이어졌고, 그 상처는 아직도 남아프리카 사회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현재의 분쟁들도 결국 영토와 자원, 정체성을 둘러싼 충돌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지 않다.

제국의 시대는 끝났다고 하지만, 힘의 논리는 여전히 세계를 지배한다. 보어전쟁의 강제수용소가 20세기 대량학살의 전조였듯이, 오늘의 분쟁들은 또 어떤 미래를 예고하는가? Zulu가 묘사한 문화 간 충돌의 비극은 극복되었는가, 아니면 단지 형태만 바뀌었을 뿐인가? 우리는 과연 타자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웠는가?

공식 예고편

Zulu (1964) — 사이 엔드필드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