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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째주 · 2024
[7월 5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Kundun과 실제 역사는 '떠남'이라는 주제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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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Kundun과 실제 역사는 '떠남'이라는 주제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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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3월 17일 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노르불링카 여름궁전을 빠져나왔다. 23세의 젊은 승려는 평민의 옷으로 변장한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라싸를 포위한 지 열흘째, 티베트인들의 봉기가 피로 물들던 시기였다. 경호원 몇 명과 함께 시작된 도보 여정은 2주간 이어졌고,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 국경에 도착한 것은 3월 31일이었다.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는 그렇게 고향을 떠났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었다.

역사 사건

달라이 라마의 탈출.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탈출의 배경에는 1950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티베트 '평화해방'이 있었다. 베이징은 봉건 농노제 타파와 민주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티베트의 종교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억압하는 과정이었다. 1959년 3월 10일, 중국군 사령부가 달라이 라마를 초청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수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노르불링카를 에워쌌다. 그들은 지도자를 보호하려 했지만, 중국군의 포격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달라이 라마의 탈출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라싸 봉기로 수천 명이 희생되었고, 이후 10만 명 이상의 티베트인이 망명길에 올랐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Kundun은 달라이 라마의 유년시절부터 인도 망명까지를 그린다. 'Kundun'은 티베트어로 '존재'를 뜻하는 달라이 라마의 별칭이다. 영화는 1937년 두 살배기 농부의 아들이 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발견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스코세이지는 할리우드 스타 대신 티베트 출신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했고, 달라이 라마의 조카 텐진 토프걀이 주연을 맡았다. 필립 글래스의 미니멀리즘 음악과 로저 디킨스의 영상미가 어우러져 명상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서사를 완성한다. 특히 어린 달라이 라마가 모래 만다라 앞에서 무상을 깨닫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은유가 된다.

영화 스틸

Kundun (1997),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 Production Company

Kundun과 실제 역사는 '떠남'이라는 주제에서 만난다. 영화는 달라이 라마의 탈출을 단순한 도피가 아닌 더 큰 책임의 선택으로 그린다. 포탄이 떨어지는 라싸에 남아 순교자가 되는 것보다, 살아서 티베트의 정신을 지키는 길을 택한 것이다. 스코세이지는 폭력과 비폭력, 저항과 인내 사이에서 고뇌하는 젊은 지도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실제로 달라이 라마는 망명 이후에도 중국과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중도노선은 때로 비판받았지만,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65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이 라마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다. 88세가 된 그는 여전히 티베트 독립이 아닌 '진정한 자치'를 요구한다. 하지만 중국은 그를 '분리주의자'로 규정하며 대화를 거부한다. 시진핑 시대 들어 티베트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승려들의 분신 항의가 이어지고, 티베트어 교육은 축소되고 있다. 한편 서구에서 티베트 문제에 대한 관심은 점차 시들해진다. 경제대국이 된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하는 탓이다. 달라이 라마의 후계자 문제도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Kundun의 마지막 장면에서 달라이 라마는 국경을 넘으며 뒤를 돌아본다. 카메라는 그의 시선을 따라 티베트의 설산을 비춘다. 그 순간 관객은 깨닫는다. 떠남이 때로는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머무름일 수 있다는 것을. 오늘날 전 세계에는 1억 명이 넘는 난민과 실향민이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미얀마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사람들이 고향을 떠난다. 그들에게 귀환은 언제쯤 가능할까? 아니면 달라이 라마처럼 마음속 고향을 품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할까?

공식 예고편

Kundun (1997) —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