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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째주 · 2024
[8월 1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가 포착한 것은 독재에 맞서는 새로운 저항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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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가 포착한 것은 독재에 맞서는 새로운 저항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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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 5일, 칠레 산티아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은 대통령궁 라 모네다를 떠났다. 17년간 이어진 군사독재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1973년 9월 11일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쿠데타 이후, 피노체트는 철권통치로 칠레를 지배했다. 3,200명 이상이 살해되었고, 8만 명이 투옥되었으며, 20만 명이 망명길에 올랐다. 그러나 1988년 10월 5일 국민투표에서 56%의 국민이 피노체트의 집권 연장에 'No'를 선택했다. 민주주의가 되돌아온 것이다.

역사 사건

칠레 피노체트 독재 종식.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피노체트의 몰락은 단순한 독재자 한 명의 퇴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냉전 시대 라틴아메리카를 휩쓸었던 군부독재의 종말을 상징했다. 미국 CIA의 지원을 받아 집권한 피노체트는 신자유주의 경제 실험장으로 칠레를 개조했다. '시카고 보이즈'라 불린 경제학자들은 급진적 시장 개혁을 단행했고, 빈부격차는 극대화되었다. 하지만 1982년 경제위기와 국제사회의 압박이 겹치면서 독재체제는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1988년 국민투표는 피노체트가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던 도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무덤을 파는 삽이 되었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No는 바로 이 1988년 국민투표를 다룬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연기한 르네 사베드라는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그는 피노체트 반대 캠페인을 맡아 15분의 TV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 영화는 실제 당시 영상과 재연 장면을 교묘하게 섞어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을 구현한다. 사베드라는 어두운 고발 대신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로 'No' 캠페인을 디자인한다. 무지개와 함께 "칠레, 기쁨이 온다"라는 슬로건은 공포에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영화 스틸

No (2012), 파블로 라라인 감독. ⓒ Production Company

영화가 포착한 것은 독재에 맞서는 새로운 저항의 방식이었다. 총과 폭탄이 아닌 광고와 이미지로, 분노가 아닌 희망의 언어로 독재자를 무너뜨린 것이다. 이는 20세기 후반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미디어가 정치적 무기가 되고, 대중문화가 저항의 도구가 되는 시대. 라라인 감독은 이 역사적 순간을 통해 권력과 이미지, 진실과 조작의 경계를 탐구한다. 독재자조차 여론의 힘 앞에서는 무력했던 것이다.

2024년 현재,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선출된 지도자들이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하고, 언론의 자유가 억압되며, 시민사회가 위축되고 있다. 하지만 칠레의 경험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아무리 강력한 독재도 영원하지 않으며, 시민들의 용기와 창의성은 불가능해 보이는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 특히 디지털 시대에 이미지와 내러티브의 힘은 더욱 강력해졌다. SNS와 유튜브가 새로운 저항의 플랫폼이 되고 있는 지금, 칠레의 'No' 캠페인은 여전히 유효한 영감을 제공한다.

역사는 때로 광고 카피처럼 단순한 선택으로 귀결된다. Yes 혹은 No. 독재자 피노체트도 결국 이 단순한 질문 앞에 무너졌다. 영화 No는 그 극적인 순간을 통해 민주주의의 본질을 되묻는다. 권력은 어디서 오는가? 정당성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떤 질문 앞에 서 있는가?

공식 예고편

No (2012) — 파블로 라라인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