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1월 4일,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이 이슬람 혁명 학생들에게 점령됐다. 52명의 미국인이 444일간 인질로 잡혀있었던 이 사건은 단순한 외교 분쟁을 넘어 두 문명 간의 충돌을 상징했다.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이란은 서구화의 길에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미국이 축출된 샤를 치료 명목으로 받아들이자, 분노한 학생들은 '대악마'의 둥지라 불리던 대사관을 습격했다. 이 사건은 카터 행정부를 무너뜨렸고, 중동 정치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이란 혁명 후 미국인 아내의 탈출, 1984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에 갇힌 미국인 여성 베티 마무디가 딸과 함께 비밀리에 국경을 넘은 실화. ⓒ AP통신
이란 혁명은 단순히 정치 체제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근대화와 전통, 세속주의와 종교,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정체성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투쟁이었다. 서구식 교육을 받은 중산층과 전통적 가치를 고수하는 종교 지도자들 사이를 둘러싼 갈등은 결국 후자의 승리로 끝났다. 여성들은 하루아침에 차도르를 써야 했고, 서구 문화는 타락의 상징이 됐다. 혁명의 열기 속에서 개인의 삶은 집단의 이념에 종속됐고, 국경은 감옥의 벽이 됐다. 이란은 스스로를 고립시켰지만, 그 안에 갇힌 것은 이란인들만이 아니었다.
브라이언 길버트 감독의 Not Without My Daughter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미국인 베티(샐리 필드)는 이란인 의사 남편 모디(알프레드 몰리나)와 함께 딸 마토브를 데리고 이란을 방문한다. 2주간의 가족 방문이라던 약속은 거짓이었고, 남편은 영구 귀국을 선언한다. 이슬람 혁명 이후의 이란에서 베티는 법적 권리를 상실한 채 갇힌 신세가 된다. 샐리 필드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딸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처절한 몸부림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문화적 충돌 속에서 개인이 겪는 고통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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