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1월 15일,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의회 건물에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겼다. '국민통합과 화해증진법'으로 명명된 이 법안은 진실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의 탄생을 알렸다.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를 위원장으로 하는 17명의 위원들은 1960년부터 1994년까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하에서 자행된 인권침해 사건들을 조사하고, 가해자들에게 사면의 기회를 제공하는 전례 없는 실험을 시작했다. 처벌 대신 진실, 복수 대신 화해를 선택한 이 위원회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7,112건의 사면 신청을 받았고, 전국을 순회하며 2만여 명의 증언을 청취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과화해위원회(TRC), 1996–2003년.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가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인권 침해를 청문한 역사적 과정. ⓒ Reuters
진실화해위원회는 단순한 법적 기구가 아니었다. 이는 분열된 국가가 선택한 치유의 방식이었다. 백인 소수가 흑인 다수를 억압했던 아파르트헤이트는 수십 년간 남아공 사회를 갈라놓았다. 고문, 실종, 살해가 일상이었던 시절, 가해자와 피해자는 같은 땅에서 살아가야 했다. 뉘른베르크 재판처럼 승자의 정의를 실현하는 대신, 남아공은 '우분투(Ubuntu)' 정신에 기반한 회복적 정의를 택했다. "나는 당신이 있기에 존재한다"는 이 철학은 가해자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되, 그들이 저지른 죄의 진실을 낱낱이 드러내는 것을 전제로 했다. 이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톰 후퍼 감독의 Red Dust는 진실화해위원회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2004년 개봉한 이 영화는 질리언 슬로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힐러리 스웽크가 연기한 미국 출신 변호사 사라 바클란드가 남아공으로 돌아와 정치범 알렉스 음폼보의 사면 신청 과정을 돕는 이야기를 담는다. 치에텔 에지오포가 연기한 음폼보는 동료 활동가 스티브 시젤라의 실종 진실을 밝히려 하고, 제이미 바틀렛이 연기한 전직 경찰관 헨드릭스는 고문의 기억을 은폐하려 한다. 영화는 법정 드라마의 형식을 빌려 진실을 둘러싼 세 인물의 치열한 대립을 그리며, 용서와 정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9월 1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는 특히 '진실'이라는 개념의 복잡성을 탐구한다](/api/image?url=https%3A%2F%2Fcdn.asia24.co.kr%2Fimages%2Ftmdb%2Ff5c8b21a53d0ecc0e4b2d560362a656f.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