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월 30일, 도미니카공화국의 산토도밍고 외곽 도로에서 총성이 울렸다. 31년간 철권통치를 이어온 라파엘 트루히요가 암살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6개월 앞선 1960년 11월 25일, 세 자매가 깊은 산길에서 비밀경찰에 의해 살해되었다. 파트리아, 미네르바, 마리아 테레사 미라발 자매. 그들의 죽음은 트루히요 정권의 몰락을 앞당긴 도화선이 되었다. 독재자는 자신이 심은 공포의 씨앗이 결국 자신을 삼킬 것임을 알았을까.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에서 벌어진 이 비극은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독재의 축소판이었다.
도미니카공화국 트루히요 독재.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트루히요는 193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래 도미니카를 개인 왕국처럼 통치했다. 국가 경제의 절반을 독점하고, 반대자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며, 심지어 수도 이름까지 '트루히요 시'로 바꿨다. 미국은 반공의 보루라는 명목으로 이 독재자를 지원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케네디 정부는 태도를 바꿨다. 쿠바 혁명의 충격이 컸다. 미라발 자매 살해는 국제사회의 분노를 불렀고, 트루히요는 더 이상 유용한 동맹이 아니었다. CIA는 은밀히 반군을 지원했고, 독재자의 최측근들조차 등을 돌렸다. 공포정치의 끝은 항상 배신으로 마무리된다.
마리아노 바로소 감독의 In the Time of the Butterflies는 미라발 자매의 삶과 죽음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살마 하이에크가 혁명가 미네르바를, 에드워드 제임스 올모스가 트루히요를 연기했다. 영화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딸들이 어떻게 독재에 맞서는 투사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지식인이었던 미네르바가 법대에서 겪는 차별과 좌절, 그리고 각성의 과정이 인상적이다. 바로소는 할리우드식 영웅주의를 배제하고, 공포 속에서도 신념을 지킨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를 조명한다. 나비처럼 연약해 보이지만 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다.
In the Time of the Butterflies (2001), 마리아노 바로소 감독. ⓒ Production Company
영화와 역사는 '침묵의 공모'라는 주제로 만난다. 트루히요 체제는 폭력만으로 유지되지 않았다. 수많은 시민들의 침묵과 방관, 그리고 작은 협력들이 독재를 떠받쳤다. 영화는 미라발 가족 내부의 갈등을 통해 이를 드러낸다. 아버지는 딸들에게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친척들은 "왜 굳이 위험을 자초하느냐"고 만류한다. 이는 독재 체제하 중산층의 전형적인 생존 전략이었다. 그러나 자매들은 깨닫는다. 침묵도 공범이라는 것을. 불의 앞에서 중립은 없다는 것을. 그들이 '라스 마리포사스'(나비들)라는 암호명을 택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2024년의 시점에서 이 이야기는 새로운 울림을 갖는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권위주의가 부활하는 지금, 트루히요식 통치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감시, 가짜뉴스를 통한 여론 조작, 사법부를 동원한 반대파 탄압. 수법만 세련되었을 뿐 본질은 같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 순응이다. 안정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고, 경제적 이익을 위해 불의를 묵인한다. 미라발 자매가 오늘날 살았다면, 그들은 무엇에 맞서 싸웠을까. 아니, 우리는 무엇에 맞서고 있는가.
독재자 트루히요는 죽었지만, 그가 만든 구조와 문화는 오래 살아남았다. 도미니카는 이후에도 긴 민주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미라발 자매의 희생이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 전해지며, 새로운 나비들을 낳았다. 유엔은 11월 25일을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로 지정했다. 역사는 묻는다. 거대한 불의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나비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이미, 누군가의 침묵 속에서 날개를 접은 나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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