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12월 8일, 상하이에 거주하던 영국인들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일본군이 상하이 조계지를 점령하면서 수천 명의 서구인들이 포로수용소로 끌려갔다. 그중에는 열한 살 소년 제임스 그레이엄 발라드도 있었다. 부유한 영국인 가정에서 자란 이 소년은 하루아침에 전쟁의 한복판으로 내던져졌다. 룽화 포로수용소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은 그의 인생 전체를 바꾸어놓았다. 훗날 작가가 된 발라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자전적 소설 『태양의 제국』을 발표했고, 이는 전쟁이 어린아이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언이 됐다.
상하이 일본군 민간인 수용소,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상하이에서 일본군에 의해 민간인 수용소에 억류된 서양인 가족들. ⓒ Imperial War Museum
상하이 조계지의 몰락은 단순한 군사적 점령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19세기 중반부터 형성된 이 국제도시는 서구 제국주의의 상징이자 동서양이 충돌하는 최전선이었다. 영국, 미국, 프랑스가 치외법권을 행사하던 이곳에서 중국인들은 2등 시민으로 살아야 했다. 그런데 일본의 침공으로 이 질서가 역전됐다. 어제까지 지배자였던 백인들이 하루아침에 포로가 됐고, 그들이 누리던 특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는 아시아에서 서구 제국주의가 종언을 고하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전쟁은 기존의 인종적 위계질서를 뒤흔들었고, 식민지 체제의 허약함을 드러냈다. 열한 살 소년의 눈에 비친 이 극적인 전환은 20세기 세계사의 거대한 변곡점을 미시적으로 보여주는 렌즈가 됐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mpire of the Sun은 발라드의 자전적 경험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소년 짐은 상하이의 부유한 영국인 가정에서 자라다가 전쟁으로 부모와 헤어진다.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3년을 보내며 그는 생존의 기술을 배운다.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보다는 소년의 시선으로 본 기이한 모험담처럼 전개된다. 짐은 비행기를 동경하고, 일본군 조종사들에게 매혹되며, 수용소의 미국인 바시(존 말코비치)와 우정을 쌓는다. 어린 베일의 연기는 순수함과 광기 사이를 오가며 전쟁이 아이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스필버그는 거대한 스케일의 전쟁 장면과 소년의 내밀한 심리를 교차시키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한 아이의 초상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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