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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프랭클린의 이야기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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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프랭클린의 이야기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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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1953년 DNA 이중나선 구조 규명에서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결정적 기여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과학사의 부당함을 다룬 영화 'Photograph 51'을 통해, 과학계의 구조적 성차별과 공동 저자권 인식 문제를 조명한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여성 과학자들의 무시와 배제 문제를 제기하며 과학사를 개인의 영웅담이 아닌 집단 지성의 역사로 재해석해야 함을 강조한다.

1953년 4월 25일, 과학 저널 네이처에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논문이 발표됐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이름으로 발표된 이 논문은 생명의 신비를 푸는 열쇠가 됐다. 하지만 같은 호에 실린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논문은 단지 "데이터를 제공했다"는 각주로만 언급됐다.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X선 결정학으로 DNA를 연구하던 그녀가 찍은 사진 51번은 이중나선 구조의 결정적 증거였다. 그러나 그녀의 동료 모리스 윌킨스가 왓슨에게 무단으로 보여준 이 사진은, 과학사의 가장 논란적인 '도용' 사례가 됐다.

Historical Photo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X선 회절 사진(Photo 51), 1952년.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의 핵심 증거인 사진 51을 촬영했으나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과학자. ⓒ King's College London

1950년대 영국 학계는 여전히 남성들의 세계였다. 프랭클린은 파리에서 돌아온 뛰어난 과학자였지만, 동료들은 그녀를 '로지'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은근히 무시했다. 그녀는 이를 거부하고 '미스 프랭클린'이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킹스칼리지의 남성 전용 휴게실에도 출입할 수 없었던 그녀는 고립된 채 연구에 몰두했다. DNA 구조 규명이라는 과학계 최대의 경쟁에서, 그녀의 신중하고 정확한 연구 방식은 직관에 의존하던 왓슨과 크릭에게 뒤처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데이터 없이는 그들의 모델도 완성될 수 없었다.

2015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연극을 영화화한 Photograph 51은 니콜 키드먼이 프랭클린을 연기한 작품이다. 마이클 그랜데이지 감독은 9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1951년부터 1953년까지의 DNA 연구 경쟁을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영화는 프랭클린의 실험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밀실극 형식을 취한다. 키드먼은 과학의 열정과 동시에 인정받지 못하는 고독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특히 X선 회절 사진을 찍는 장면에서, 방사선에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하며 진실에 다가서려는 그녀의 집념이 인상적으로 드러난다.

Photograph 51 영화 스틸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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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의 구조적 성차별

Photograph 51 (2015), 마이클 그랜데이지 감독. 니콜 키드먼이 연기한 프랭클린이 연구실에서 DNA 구조의 비밀에 다가가는 장면. ⓒ Michael Grandage Company

영화는 프랭클린의 사진 51번을 둘러싼 윤리적 딜레마를 중심에 놓는다. 과학적 발견의 영광과 개인의 기여도 사이의 긴장, 협력과 경쟁의 모호한 경계선을 탐구한다. 왓슨과 크릭이 노벨상을 받는 1962년, 프랭클린은 이미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다. 37세의 짧은 생애 동안 그녀는 DNA뿐 아니라 RNA와 바이러스 연구에서도 중요한 성과를 남겼다. 영화는 묻는다. 만약 그녀가 정당한 인정을 받았다면, 만약 그녀가 더 오래 살았다면, 과학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과거의 아쉬움이 아니라, 현재의 과학계가 여전히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프랭클린의 이야기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와닿는다. 2023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캐털린 커리코도 mRNA 백신 개발 과정에서 비슷한 무시와 배제를 경험했다. 과학계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학적 발견의 '저자권'의 우리 인식이다. 위대한 발견은 한 개인의 천재성이 아니라 수많은 연구자들의 협업과 축적의 결과다. 프랭클린의 데이터가 없었다면 왓슨과 크릭의 모델도 없었을 것이고, 그들의 모델이 없었다면 현대 유전학도 없었을 것이다. 과학사를 영웅 서사가 아닌 집단 지성의 역사로 다시 쓸 때가 왔다.

사진 51번은 단순한 X선 회절 이미지가 아니라, 과학 공동체의 윤리를 비추는 거울이다. 프랭클린은 죽기 전 왓슨과 크릭을 용서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의 관대함에 기대어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Photograph 51이 보여주듯, 진실을 향한 열정과 정의를 향한 열망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수많은 '프랭클린'들이 묵묵히 일하고 있다. 그들의 기여를 어떻게 인정하고 기억할 것인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진정한 진보는 잊혀진 이들의 목소리를 복원할 때 시작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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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이중나선 구조 논문 발표
출처: Nature, Watson·Crick 논문 1953년 4월 25일 게재

Photograph 51 (2015), 마이클 그랜데이지 감독. 니콜 키드먼이 연기한 프랭클린이 연구실에서 DNA 구조의 비밀에 다가가는 장면. ⓒ Michael Grandage Company

영화는 프랭클린의 사진 51번을 둘러싼 윤리적 딜레마를 중심에 놓는다. 과학적 발견의 영광과 개인의 기여도 사이의 긴장, 협력과 경쟁의 모호한 경계선을 탐구한다. 왓슨과 크릭이 노벨상을 받는 1962년, 프랭클린은 이미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다. 37세의 짧은 생애 동안 그녀는 DNA뿐 아니라 RNA와 바이러스 연구에서도 중요한 성과를 남겼다. 영화는 묻는다. 만약 그녀가 정당한 인정을 받았다면, 만약 그녀가 더 오래 살았다면, 과학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과거의 아쉬움이 아니라, 현재의 과학계가 여전히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프랭클린의 이야기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와닿는다. 2023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캐털린 커리코도 mRNA 백신 개발 과정에서 비슷한 무시와 배제를 경험했다. 과학계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학적 발견의 '저자권'의 우리 인식이다. 위대한 발견은 한 개인의 천재성이 아니라 수많은 연구자들의 협업과 축적의 결과다. 프랭클린의 데이터가 없었다면 왓슨과 크릭의 모델도 없었을 것이고, 그들의 모델이 없었다면 현대 유전학도 없었을 것이다. 과학사를 영웅 서사가 아닌 집단 지성의 역사로 다시 쓸 때가 왔다.

사진 51번은 단순한 X선 회절 이미지가 아니라, 과학 공동체의 윤리를 비추는 거울이다. 프랭클린은 죽기 전 왓슨과 크릭을 용서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의 관대함에 기대어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Photograph 51이 보여주듯, 진실을 향한 열정과 정의를 향한 열망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수많은 '프랭클린'들이 묵묵히 일하고 있다. 그들의 기여를 어떻게 인정하고 기억할 것인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진정한 진보는 잊혀진 이들의 목소리를 복원할 때 시작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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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잘린드 프랭클린 생애
1920년 생, 1958년 난소암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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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 규명 노벨상 수상
출처: NobelPrize.org, 1962년 왓슨·크릭·윌킨스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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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털린 커리코 노벨 화학상 수상
출처: NobelPrize.org, 커리코는 2023년 노벨생리의학상 공동수상

1950년대부터 21세기까지 반복되는 여성 과학자들의 배제와 무시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형인 문제다. 프랭클린과 커리코의 사례는 과학계의 '유리천장'이 여전히 견고함을 보여준다.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 한 개인의 천재성이 아닌 수많은 연구자의 협업 결과라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프랭클린의 데이터 없이 왓슨과 크릭의 모델도 현대 유전학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진실을 향한 열정과 정의를 향한 열망은 분리될 수 없으며, 과학사를 승자의 기록이 아닌 잊혀진 이들의 목소리 복원으로 다시 써야 한다는 근본적 성찰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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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발견의 저자권 문제
3
사회적 정의와 과학 윤리의 연결
공식 예고편

Photograph 51 (2015) — 마이클 그랜데이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