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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째주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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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그것은 총성이 멎은 곳에서도 죽음이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영화로 세상을 보다

[11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그것은 총성이 멎은 곳에서도 죽음이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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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예멘 내전의 참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헝거 워드'는 전쟁으로 인한 기아와 구조적 폭력의 실체를 보여준다. 총성이 멎은 후에도 계속되는 죽음, 특히 어린이들의 영양실조 문제는 국제사회의 무관심과 강대국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결과다.

2014년 9월 21일,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후티 반군이 정부청사를 점령했다. 시아파 무장조직 후티는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정부의 실정과 부패를 규탄하며 봉기했고, 이는 곧 내전의 서막이 됐다. 2015년 3월 26일,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 연합군이 개입하면서 예멘은 국제 대리전의 전장으로 변모했다. 유엔은 이미 2018년부터 예멘을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로 규정했다. 40만 명이 넘는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5세 미만 어린이였고, 2,400만 명이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역사 사건

예멘 내전과 기근, 2015년–현재. 사우디 주도 연합군의 봉쇄와 내전으로 2,400만 인구 중 1,600만 명이 기아 위기에 처한 예멘. ⓒ UNICEF

예멘 내전의 본질은 단순한 종파 갈등을 넘어선다.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후티와 사우디가 지원하는 수니파 정부군의 대립은 중동 패권을 둘러싼 지정학적 각축전이다. 미국과 영국은 사우디에 무기를 판매하며 간접적으로 전쟁에 가담했고, 이란은 후티에게 드론과 미사일 기술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지정학적 게임의 희생자는 언제나 민간인이었다. 봉쇄된 항구, 파괴된 병원, 오염된 수원지. 예멘은 콜레라가 창궐하고 기아가 일상이 된 지옥도로 변했다.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은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고, 전쟁은 끝없이 이어졌다.

스카이 피츠제럴드 감독의 다큐멘터리 Hunger Ward는 예멘 내전의 참상을 가장 연약한 존재들의 시선으로 포착한다. 2020년에 공개된 이 작품은 사다와 아이다라는 두 명의 예멘 여성 의사가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돌보는 과정을 따라간다. 카메라는 뼈만 남은 아이들의 몸, 절망에 빠진 어머니들의 눈물, 그리고 의료 물자 부족으로 무력감에 빠진 의사들의 고통을 가감 없이 담아낸다. 85분의 상영시간 동안 관객은 전쟁이 만들어낸 기아의 실체와 직면한다. 피츠제럴드는 정치적 선전이나 감정적 호소를 배제하고, 오직 현실의 무게만으로 승부한다.

영화 스틸

역사적 사건과 다큐멘터리가 만나는 지점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는 주제다. Hunger Ward의 카메라가 포착하는 것은 폭탄이 아니라 뼈만 남은 아이들의 몸이다. 피츠제럴드 감독은 예멘에서 벌어지는 기아를 전쟁의 부수적 피해가 아닌 의도된 무기로 규정한다. 항구 봉쇄와 식량 차단은 총알만큼이나 치명적인 전략이며, 그 표적은 가장 연약한 존재들이다. 영화 속 의사 아이다가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장면은, 통계로는 전달할 수 없는 전쟁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 기아는 침묵의 학살이며, 그 침묵을 깨뜨리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역할이다.

한국 사회는 예멘 난민 문제를 통해 이 먼 나라의 비극과 직접 조우한 경험이 있다. 2018년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 500여 명은 한국 사회에 난민 수용 논쟁을 촉발했다.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난민 수용 반대 청원이 70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그러나 그 논쟁의 이면에는 예멘 내전이라는 참혹한 현실이 있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예멘 인구의 80%인 2,160만 명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면서도 난민 인정률이 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먼 나라의 전쟁이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외면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총성이 멎은 곳에서도 죽음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잊는가. 뉴스 화면 속 전쟁은 폭발과 연기로 가득하지만, 진짜 비극은 카메라가 떠난 뒤에 시작된다. 예멘의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동안, 사우디에 무기를 판매하는 국가들의 주가는 올라간다. 이 모순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적어도 외면하지 않는 것,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은가.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잊혀진 전쟁의 현재성

가자 전쟁 등 신규 분쟁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면서 예멘의 인도주의 위기는 외면받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대량 기아와 어린이 사망은 계속되고 있다.

2
구조적 폭력의 실체

폭탄과 포격보다 봉쇄와 기아가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간다는 사실은 전쟁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는 21세기 국제정치의 실패를 상징한다.

3
강대국 책임과 윤리

미국, 영국, 사우디, 이란 등 강대국의 대리전 개입이 민간인 피해를 초래했으나,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은 계속 실패하고 있다.

공식 예고편

Hunger Ward (2020) — 스카이 피츠제럴드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