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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째주 · 2024
[12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빈부 격차는 커졌고, 사회적 연대는 약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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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빈부 격차는 커졌고, 사회적 연대는 약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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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19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5월 광장은 분노한 시민들로 가득했다. 페르난도 데 라 루아 대통령이 헬리콥터를 타고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를 탈출하는 장면은 한 시대의 종말을 알렸다. 냄비를 두드리며 거리로 나선 중산층들, 약탈당한 슈퍼마켓, 39명의 사망자. 이 모든 것은 1998년부터 시작된 경제 침체가 폭발한 순간이었다. 외채 1,320억 달러, 실업률 25%, 빈곤율 57.5%. 숫자들은 차갑지만, 그 안에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수백만 명의 삶이 있었다.

역사 사건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2001.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아르헨티나의 경제 붕괴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1990년대 카를로스 메넴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페소화와 달러의 1:1 고정환율제, 무분별한 외채 도입이 만들어낸 구조적 모순이었다. 중산층이 하룻밤 사이에 빈곤층으로 전락했고, 은행 예금은 동결됐다. '코랄리토'라 불린 예금 인출 제한 조치는 시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정치 엘리트들은 위기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겼고, 2주 동안 5명의 대통령이 교체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국가의 통치 시스템 자체가 붕괴한 것이다.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의 The Headless Woman은 2008년 칸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중년 여성 베로니카가 운전 중 무언가를 치고도 멈추지 않고 가버린 후, 점차 현실감을 잃어가는 이야기다. 마리아 오네토가 연기한 베로니카는 상류층 치과의사로, 사고 이후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뭔가 어긋나 있다. 카메라는 그녀의 뒤통수와 옆모습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관객조차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녀가 친 것이 개인지 사람인지조차 모호하다.

영화 스틸

The Headless Woman (2008),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 ⓒ Production Company

마르텔의 영화와 2001년 아르헨티나 위기는 묘한 공명을 일으킨다. 베로니카가 사고 후 보이는 부인과 망각의 메커니즘은 아르헨티나 중산층이 경제 붕괴라는 참사 앞에서 보인 태도와 닮았다. 영화 속 상류층 가족들이 베로니카를 보호하기 위해 증거를 은폐하고 사건을 덮으려는 모습은, 위기의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려 했던 엘리트들의 행태를 연상시킨다. 머리 없는 여자라는 은유는 곧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국가의 초상이다. 보이지 않는 폭력, 은폐된 진실, 집단적 망각이라는 주제가 두 텍스트를 관통한다.

2001년의 상처는 아직도 아르헨티나를 떠돌고 있다. 2023년 하비에르 밀레이라는 극우 포퓰리스트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그 트라우마의 연장선이다. 체제에 대한 불신,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이 또 다른 극단을 불러온 것이다. 마르텔의 영화가 포착한 중산층의 도덕적 마비 상태는 오늘날 더욱 심화됐다. 빈부 격차는 커졌고, 사회적 연대는 약화됐다. 페소화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인플레이션은 100%를 넘나든다. 과거를 직시하지 못한 사회는 같은 비극을 반복한다.

베로니카는 영화 내내 "뭔가를 쳤다"고 중얼거리지만, 정작 무엇을 쳤는지 확인하러 돌아가지는 않는다. 아르헨티나 사회 역시 2001년의 충격 이후 무엇이 깨졌는지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신자유주의의 실패인지, 포퓰리즘의 유산인지, 아니면 더 깊은 구조적 문제인지. 마르텔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정말로 무엇을 쳤는지 알고 있는가? 아니면 베로니카처럼 애써 잊으려 하고 있는가? 망각은 편하지만, 기억하지 않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기억하기로 선택했는가?

공식 예고편

The Headless Woman (2008) —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