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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째주 · 2024
[12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혁명은 광장에서 시작되지만 일상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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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혁명은 광장에서 시작되지만 일상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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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5일,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30년간 철권통치를 이어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들의 함성은 중동 전역을 뒤흔든 '아랍의 봄'의 절정이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불꽃이 이집트로 번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높은 실업률과 부정부패, 경찰의 폭력에 지친 젊은이들이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결집했고, 18일간의 시위 끝에 무바라크는 권좌에서 물러났다. 타흐리르 광장은 그렇게 21세기 시민혁명의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역사 사건

이집트 아랍의 봄.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그러나 독재자의 퇴진이 곧 민주주의의 도래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무바라크 정권 붕괴 이후 이집트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무슬림형제단이 권력을 잡았다가 1년 만에 군부 쿠데타로 축출되었고, 압둘팟타흐 시시 장군이 새로운 독재자로 등장했다. 혁명의 주역이었던 세속주의 청년들과 이슬람주의자들, 그리고 군부 세력 간의 갈등은 이집트 사회를 삼분시켰다. 광장에서 함께 '빵, 자유, 사회정의'를 외치던 이들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되었다. 아랍의 봄은 그렇게 겨울로 변해갔다.

제헤인 누자임 감독의 The Square는 바로 이 격동의 시간을 생생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타흐리르 광장에서 벌어진 혁명의 전 과정을 밀착 촬영한 이 작품은 아흐메드, 칼리드, 마그디라는 세 명의 활동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혁명의 열기와 좌절,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이들의 모습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개인의 눈높이에서 조망하게 한다. 누자임 감독은 시위 현장의 긴박한 순간들과 활동가들의 일상을 교차 편집하며, 혁명이 단지 광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영화 스틸

The Square (2013), 제헤인 누자임 감독. ⓒ Production Company

이집트 혁명과 The Square는 모두 '미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닮았다. 혁명이 독재자 한 명의 퇴진으로 완성되지 않듯, 영화 역시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혁명 과정에서 드러난 이집트 사회의 복잡한 균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세속주의자와 이슬람주의자, 혁명파와 보수파,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은 단순한 선악구도로 설명될 수 없다. 누자임 감독은 각자의 신념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균형 있게 담아내며,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증언한다.

2024년 말, 이집트 혁명으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중동은 여전히 격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자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시리아에서는 또 다른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아랍의 봄이 남긴 교훈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제도의 이식만으로 달성되지 않으며, 오랜 시간에 걸친 시민사회의 성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타흐리르 광장의 함성은 사라졌지만, 자유와 존엄을 향한 인간의 열망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혁명은 광장에서 시작되지만 일상에서 완성된다. The Square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진정한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라는 이상과 현실 정치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2011년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이집트 시민들의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연대의 기억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불의에 맞서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우리는 과연 그들의 질문에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공식 예고편

The Square (2013) — 제헤인 누자임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