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진원지는 미야기현 오시카 반도에서 동쪽으로 130킬로미터 떨어진 해저였다. 지진에 이은 쓰나미는 최고 40미터의 파도로 해안을 덮쳤고,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전원 공급 시스템을 마비시켰다. 1만 5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십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러나 이 재앙의 진정한 공포는 원자로 노심 용융이라는, 인류가 만든 또 다른 재앙이었다. 체르노빌 이후 최악의 원전 사고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후 원전에 남아 냉각 작업을 계속한 '후쿠시마 50인'의 결사적 대응. ⓒ 도쿄전력(TEPCO)
동일본 대지진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일본이 전후 고도성장을 거치며 구축한 '안전신화'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54기의 원전을 운영하며 원자력을 '꿈의 에너지'로 홍보해온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상정외'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했다. 쓰나미 높이를 5.7미터로 예상했던 설계 기준은 15미터의 파도 앞에 무력했다. 사고 직후 정부의 정보 통제와 은폐는 국민의 불신을 증폭시켰다. 원자력 안전 신화는 붕괴했고, 일본 사회는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받았다. 과학기술의 맹신, 경제성장 우선주의, 관료주의적 무책임이 빚어낸 인재였다.
와카마쓰 세쓰로 감독의 Fukushima 50은 원전 사고 당시 현장에 남아 최악의 참사를 막으려 했던 50명의 작업원들을 그린다. 사토 코이치가 연기한 이즈미 소장과 와타나베 켄이 맡은 요시다 소장을 중심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원자로에 접근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재난 스펙터클보다는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 드라마에 집중한다. 가족에게 마지막 전화를 거는 작업원들, 본사와 현장 사이를 둘러싼 갈등, 그리고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살리러 간다'는 각오.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는 영웅주의를 배제하고 평범한 인간들의 용기를 전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