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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째주 · 2025
[1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그러나 독재자의 죽음이 곧 자유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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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그러나 독재자의 죽음이 곧 자유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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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0일, 리비아의 시르테에서 42년간 철권통치를 이어온 무아마르 카다피가 최후를 맞았다. 그의 고향이자 마지막 거점이었던 이 도시의 하수구에 숨어있던 독재자는 반군에게 발견되어 끌려나왔고, 군중들의 분노 속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랍의 봄이 시작된 지 10개월, 리비아 내전이 발발한 지 8개월 만의 일이었다. 한때 '아프리카의 왕들의 왕'을 자처하며 서방과 대립각을 세웠던 카다피의 몰락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열망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독재자의 죽음이 곧 자유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리비아는 카다피 사후에도 내전과 분열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수많은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비극적 행렬이 이어졌다.

역사 사건

리비아 카다피 몰락.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카다피의 몰락은 단순히 한 독재자의 종말이 아니라 냉전 이후 중동 질서의 재편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카다피는 석유 자원을 바탕으로 반서방, 반제국주의를 표방하며 독특한 정치체제인 '자마히리야'를 구축했다. 그는 아랍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한 '제3의 길'을 주창했지만, 실상은 부족 정치와 개인 숭배에 기반한 독재체제였다.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의 불꽃이 리비아에 옮겨붙자, 카다피는 무력으로 진압에 나섰고 이는 NATO의 개입을 불러왔다. 서방의 군사 지원을 받은 반군 세력은 결국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그 과정에서 리비아는 파편화되었고 각 지역의 민병대들이 할거하는 무정부 상태로 전락했다.

팔레스타인 출신 감독 마디 플레이펠의 다큐멘터리 A World Not Ours는 레바논 남부 아인 엘 헬웨 난민촌의 일상을 담담히 기록한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을 떠난 난민들이 정착한 이 캠프는 60년이 넘도록 '임시' 거주지로 남아있다.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방문했던 이곳의 친구들과 가족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영원한 망명 상태에 갇힌 사람들의 삶을 조명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청년 아부 이야드는 월드컵을 TV로만 볼 수 있고, 캠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세대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 난민의 신분, 국적도 시민권도 없는 유령 같은 존재들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 스틸

A World Not Ours (2012), 마디 플레이펠 감독. ⓒ Production Company

카다피의 몰락과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일상은 언뜻 무관해 보이지만, 중동 지역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카다피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지한다며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지만, 정작 리비아 내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2차 시민으로 취급받았다. 그의 몰락 이후 리비아를 떠난 난민들 역시 아인 엘 헬웨의 팔레스타인인들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영화 속 난민캠프의 좁은 골목과 철조망은 카다피 정권 하의 리비아가 가진 폐쇄성과 닮아있다. 독재자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상처와 분열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았고, 새로운 난민들을 양산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카다피 몰락으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리비아는 여전히 두 개의 정부가 대립하는 분단 상태다.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선의 출발지가 된 리비아 해안에서는 매년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다. 한편 A World Not Ours에 등장하는 아인 엘 헬웨 난민촌은 2023년에도 무장 충돌로 수십 명이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독재자의 제거가 자유와 평화를 보장하지 않듯, 난민캠프의 존재 자체가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카다피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무질서였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을 대체한 것은 영구적 망명이었다. 중동의 비극은 독재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유산, 종파 갈등, 외세 개입이 얽힌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다.

역사는 때로 극적인 전환점을 만들지만, 일상은 느리고 지난하게 계속된다. 카다피가 하수구에서 끌려나오던 그날, 아인 엘 헬웨의 주민들은 여느 때처럼 좁은 골목을 오가며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혁명의 환호성과 난민촌의 침묵은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공존하는 이중적 현실이다. A World Not Ours가 보여주는 것처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누군가의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 독재자는 몰락했지만 난민은 여전히 난민이고, 새로운 난민들은 계속 생겨난다. 우리는 과연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카다피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더 많은 '우리의 것이 아닌 세계들'을 만들어낼 것인가?

공식 예고편

A World Not Ours (2012) — 마디 플레이펠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