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4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가 포위되자 도시는 지옥으로 변했다. 세르비아계 무장세력은 체계적인 민족청소를 시작했고, 특히 무슬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은 전쟁 무기로 사용됐다. 당시 16세였던 바키라 하시치는 비셰그라드의 수용소에서 3개월간 반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 그녀처럼 약 5만 명의 보스니아 여성이 강간 수용소에서 고통받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들의 상처는 침묵 속에 묻혀 있었다. 가해자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피해 여성들은 가족과 사회의 편견 속에서 이중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보스니아 전쟁 중 조직적 성폭력, 1992–1995년. 보스니아 내전에서 2만–5만 명의 여성이 조직적 성폭력 피해를 당한 사건. ⓒ 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보스니아 전쟁에서의 성폭력은 단순한 개인 범죄가 아니었다. 그것은 민족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조직적 전략이었다. 세르비아계 지도부는 무슬림 여성을 임신시켜 '세르비아 아이'를 낳게 함으로써 민족의 순수성을 오염시키려 했다. 국제사회는 뒤늦게 이를 전쟁범죄로 규정했지만, 정의 실현은 더뎠다. 2001년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는 처음으로 전시 성폭력을 반인도적 범죄로 판결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해자는 여전히 처벌받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전쟁의 부수적 피해'로 치부됐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설립됐지만, 여성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렀다.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의 Grbavica는 전쟁이 끝난 지 10년 후 사라예보를 배경으로 한다. 싱글맘 에스마는 12살 딸 사라와 함께 그르바비차 지구의 낡은 아파트에 산다. 사라는 학교 수학여행비 면제를 받으려면 아버지가 전쟁영웅이었다는 증명서가 필요하다. 에스마는 딸에게 아버지가 샤히드(순교자)라고 말해왔지만, 증명서를 구할 수 없다. 미르야나 카라노비치는 비밀을 간직한 어머니의 고통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영화는 전쟁의 상흔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지속되는지, 침묵이 어떻게 또 다른 폭력이 되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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