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3월 28일 새벽 4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 인근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 2호기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급수펌프가 멈추면서 시작된 일련의 기계적 고장과 운영자의 판단 착오가 겹쳐 원자로 노심이 부분적으로 녹아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직접 현장을 방문해 주민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반경 8킬로미터 내 임산부와 어린이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졌고 14만 명이 자발적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는 이렇게 시작됐다.
스리마일 원전사고.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스리마일 사고는 단순한 기술적 실패가 아니었다. 1973년 석유파동 이후 원자력을 미래 에너지로 밀어붙이던 미국 정부와 전력회사들은 안전보다 효율을 우선했다. 원전 운영자들은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고, 규제기관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업계의 로비에 포획되어 있었다. 사고 후 조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유사한 밸브 고장은 이미 다른 원전에서도 보고됐지만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다. 냉전 시대 핵 우월성에 대한 집착이 만든 구조적 문제가 결국 재앙으로 이어진 것이다.
놀랍게도 스리마일 사고 불과 12일 전인 3월 16일, 제임스 브리지스 감독의 The China Syndrome이 개봉했다. 제인 폰다가 야심찬 TV 리포터 킴벌리 웰스를, 잭 레먼이 양심적인 원전 기술자 잭 고델을 연기한 이 영화는 가상의 원전 사고를 다뤘다. 취재 중 우연히 원전 사고를 목격한 킴벌리가 진실을 파헤치려 하지만, 전력회사는 은폐와 조작으로 맞선다. 특히 잭 레먼은 안전보다 이익을 우선하는 회사와 맞서다 비극적 최후를 맞는 기술자 역을 절제된 연기로 그려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The China Syndrome (1979), 제임스 브리지스 감독. ⓒ Production Company
영화와 현실의 유사성은 섬뜩할 정도다. The China Syndrome에서 원전 관계자는 "노심 용융이 일어나면 차이나 신드롬으로 지구 반대편 중국까지 뚫고 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스리마일에서도 실제로 노심의 절반이 녹아내렸다. 영화 속 전력회사가 사고를 은폐하려 하듯, 실제로도 운영사인 메트로폴리탄 에디슨은 초기에 상황의 심각성을 축소했다. 무엇보다 두 사건 모두 인간의 오만과 탐욕이 만든 시스템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기술 자체보다 그것을 다루는 인간과 조직의 문제가 재앙을 부른다는 통찰은 영화가 현실을 예견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46년이 지난 2025년, 우리는 여전히 같은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기후위기로 탈탄소가 절실한 시대, 원자력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형모듈원자로와 핵융합 등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지만, 후쿠시마 사고가 보여주듯 인간의 오류와 자연재해라는 변수는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도 원전 비중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기술은 진화했지만 안전을 담보할 거버넌스와 투명성은 과연 함께 진화했을까. 스리마일의 교훈은 기술보다 그것을 다루는 사회적 역량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제인 폰다는 The China Syndrome 개봉 당시 "원자력 산업계는 우리를 음모론자로 몰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12일 후 현실이 된 영화는 예술이 가진 예언적 힘을 보여줬다. 스리마일 사고는 미국의 원전 건설을 사실상 중단시켰고,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로 이어지는 비극의 서막이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적 해법만이 아니라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감시 시스템, 그리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다. 과연 우리는 다음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영화 속 킴벌리처럼 진실을 찾아 나설 수 있을까?

![[3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와 현실의 유사성은 섬뜩할 정도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the_china_syndrome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