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세상
세계와 스크린 사이
4월 2째주 · 2025
[4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는 이러한 지연된 폭력을 시각화하는 데 주력한다
영화로 세상을 보다

[4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는 이러한 지연된 폭력을 시각화하는 데 주력한다

기사 듣기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며 베트남 전쟁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전쟁의 상처는 끝나지 않았다. 1961년부터 1971년까지 미군이 살포한 8천만 리터의 고엽제는 베트남 전역을 오염시켰다. '에이전트 오렌지'라 불린 이 화학무기는 다이옥신을 함유한 독극물로, 정글의 나뭇잎을 떨어뜨려 베트콩의 은신처를 없애려는 목적이었다. 랜치 핸드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살포는 베트남 국토의 10분의 1에 달하는 지역을 황폐화시켰고, 300만 명 이상의 베트남인과 수만 명의 미군 참전용사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남겼다.

역사 사건

베트남 고엽제 피해.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고엽제의 참상은 단순한 환경 파괴를 넘어섰다. 다이옥신은 인체에 축적되어 암, 당뇨병, 파킨슨병을 유발했고, DNA를 손상시켜 2세, 3세에까지 기형과 장애를 대물림했다. 베트남 정부는 480만 명이 고엽제에 노출되었고, 이 중 300만 명이 질병을 앓고 있다고 추산한다. 미국 정부는 오랜 부인 끝에 1991년 고엽제법을 제정해 자국 참전용사들에게만 보상을 시작했지만, 베트남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전쟁범죄에 대한 선택적 정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2006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Agent Orange는 여러 감독이 참여한 집단 작업으로, 고엽제 피해의 실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영화는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성의 한 마을을 중심으로, 3대에 걸친 피해 가족들의 일상을 담담히 따라간다.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들, 암으로 죽어가는 농부들, 오염된 땅에서 여전히 농사를 지어야 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교차된다. 특히 영화는 미군 참전용사들의 증언과 베트남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병치시켜, 가해와 피해가 어떻게 국경을 넘어 연결되는지 보여준다.

영화 스틸

Agent Orange (2006), 다수 감독 감독. ⓒ Production Company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고엽제 살포와 영화 Agent Orange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는 주제로 만난다. 폭탄이나 총알과 달리 고엽제는 서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생명을 파괴한다. 영화는 이러한 지연된 폭력을 시각화하는 데 주력한다. 선천적 장애를 가진 아이의 일그러진 손발, 암 환자의 부은 배, 황폐해진 논밭의 풍경은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지나도 계속되는 전쟁의 흔적이다.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은 이 보이지 않는 폭력에 얼굴을 부여하고, 통계 속에 묻힌 개인의 고통을 복원한다.

고엽제 문제는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2025년 현재도 베트남에서는 매년 수천 명의 기형아가 태어나고 있으며, 오염된 토양과 지하수는 여전히 주민들을 위협한다. 한국군이 살포한 고엽제 피해를 호소하는 베트남 주민들의 소송은 한국 법원에서 계속되고 있다. 환경 파괴가 인류세의 화두가 된 지금, 고엽제는 전쟁이 자연과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의 극단적 사례로 재조명된다.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이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되고 있는 시대에, 고엽제의 교훈은 더욱 절실하다.

전쟁의 상처는 언제 치유될 수 있을까? Agent Orange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 베트남 어머니는 기형으로 태어난 아들을 안고 묻는다. "이 아이가 무슨 죄가 있나요?" 그녀의 질문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답을 기다리고 있다. 고엽제는 단순한 화학무기가 아니라 인간의 오만과 전쟁의 광기가 만들어낸 영구적 상처다. 우리는 과연 이 상처를 마주볼 용기가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국가의 명분과 안보의 논리 뒤에 숨어, 보이지 않는 폭력을 외면하고 있는가?

공식 예고편

Agent Orange (2006) — 다수 감독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