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2월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에서 프렌드십 7호가 발사됐다. 존 글렌은 미국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비행사가 됐고, 이는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최초 우주비행에 성공한 지 10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역사적 순간의 이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영웅들이 있었다. NASA 랭글리 연구센터의 서편 지역에서 일하던 흑인 여성 수학자들이었다. 캐서린 고블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 이들은 '컬러드 컴퓨터'라 불리며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1960년대 초 미국에서 머큐리 계획의 핵심 계산을 담당했다. 특히 캐서린 존슨은 존 글렌의 귀환 궤도를 손으로 검산해 우주비행사의 안전한 귀환을 보장했다.
NASA 흑인 여성 수학자들, 1960년대. 냉전 우주경쟁 시기 나사에서 궤도 계산을 담당했으나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캐서린 존슨 등 흑인 여성 과학자들. ⓒ NASA
냉전의 한복판에서 미소 양국의 우주경쟁은 단순한 과학기술 경쟁을 넘어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이념전쟁이었다. 1957년 스푸트니크 발사로 충격에 빠진 미국은 NASA를 창설하고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와 평등을 표방하는 미국은 여전히 짐 크로 법이 존재하는 인종차별 국가였다. NASA 내부에서조차 화장실과 식당이 분리돼 있었고, 흑인 여성들은 이중의 차별을 견뎌내야 했다. 그럼에도 이들의 탁월한 능력은 미국의 우주 프로그램에 필수적이었다. 냉전이라는 거대한 외부 압력이 역설적으로 내부의 차별 장벽을 허무는 계기가 된 것이다.
시어도어 멜피 감독의 Hidden Figures는 이 숨겨진 역사를 스크린에 되살려냈다. 타라지 P. 헨슨이 연기한 캐서린 존슨은 800미터나 떨어진 유색인종 화장실을 찾아 뛰어다니면서도 복잡한 궤도 계산을 해내는 천재 수학자로 그려진다. 옥타비아 스펜서의 도로시 본은 IBM 컴퓨터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서 스스로 포트란을 익혀 프로그래머가 되고, 자넬 모네가 연기한 메리 잭슨은 법정 투쟁을 통해 백인 전용 학교에서 공부할 권리를 쟁취한다. 영화는 이들의 일상적 차별 경험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인간의 존엄과 전문성을 부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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