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6분, 아메리칸 항공 11편이 뉴욕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에 충돌했다. 이어 9시 3분,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남쪽 타워를 강타했다. 그로부터 34분 후인 9시 37분, 아메리칸 항공 77편이 펜타곤에 추락했다. 그리고 10시 3분, 펜실베이니아 샹크스빌 들판에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이 추락했다. 이날 2,977명이 목숨을 잃었고, 19명의 납치범을 포함해 총 2,996명이 사망했다. 세계무역센터에서만 2,606명이, 펜타곤에서 125명이, 그리고 유나이티드 93편에서 40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희생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테러 공격이었고, 현대 문명에 대한 전면적 도전이었다.
세계무역센터 9/11.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9/11은 단순한 테러 공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냉전 종식 이후 형성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대한 극단적 거부였고, 문명 충돌론이 현실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는 1990년대부터 미국의 중동 정책,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내 미군 주둔과 이스라엘 지원을 비판하며 지하드를 선언했다.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2000년 USS 콜 함정 공격에 이어 9/11은 그들의 가장 야심찬 작전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졌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세계는 9/11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되었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United 93은 그날의 네 번째 비행기,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에서 일어난 일을 재현한다. 영화는 평범한 아침, 승객들이 탑승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46분간의 비행 후 네 명의 납치범이 행동을 개시하고, 승객들은 다른 비행기들이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충돌했다는 소식을 전화로 듣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깨닫고 결단을 내린다. "Let's roll"이라는 토드 비머의 외침과 함께 승객들은 조종실 탈환을 시도한다. 그린그래스는 실시간에 가까운 방식으로, 핸드헬드 카메라와 무명 배우들을 통해 그날의 공포와 용기를 생생하게 되살린다. 영화는 어떤 영웅주의적 과장도 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극한 상황에서 내린 선택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United 93 (2006), 폴 그린그래스 감독. ⓒ Production Company
9/11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과 United 93이라는 영화가 만나는 지점은 '선택'이다. 납치범들은 순교를 선택했고, 승객들은 저항을 선택했다. 양쪽 모두 죽음을 각오한 선택이었지만, 그 의미는 정반대였다. 납치범들의 선택이 파괴와 증오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승객들의 선택은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희생이었다. 영화는 이 대비를 통해 테러리즘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것은 단순히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반면 유나이티드 93편 승객들의 저항은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들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그로써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증명했다.
9/11로부터 2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그날의 그림자 속에 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했고, 탈레반이 다시 집권했다. 이슬람 국가(IS)라는 새로운 극단주의 세력이 등장했다가 쇠퇴했지만, 테러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이슬람 혐오와 인종차별이 확산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적 극단주의가 여전히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거치며 세계는 더욱 분열되고 있다. 그러나 United 93이 보여준 것처럼, 위기의 순간에 인간은 연대할 수 있고, 공포를 넘어설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연대가 위기 상황에서만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9/11은 진주만 공격처럼 미국 본토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었지만, 그 주체는 국가가 아닌 비국가 행위자였다. 테러리즘은 약자의 무기라고 하지만, 그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United 93의 승객들이 보여준 것은 폭력에 맞선 또 다른 종류의 용기였다. 그들은 살인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희생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이것이 문명과 야만의 차이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갈등과 분열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을 끊고 화해와 이해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여전히 9/11의 트라우마에 갇혀, 공포와 불신의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5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납치범들은 순교를 선택했고, 승객들은 저항을 선택했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united_93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