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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째주 ·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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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하나는 정치권력의 폭력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착취의 극단이다
영화로 세상을 보다

[5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하나는 정치권력의 폭력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착취의 극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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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1980년 수리남 쿠데타로 시작된 군부 독재와 도미니카 사탕수수 농장의 이주노동자 착취를 다룬 영화들을 통해, 정치권력의 폭력과 경제적 착취라는 구조적 폭력의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식민주의의 유산과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이 같은 착취 체계는 현재도 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1980년 2월 25일 새벽, 수리남의 수도 파라마리보에서 16명의 하사관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데시 바우테르세가 이끄는 이들은 헨크 아론 정부를 전복시키고 군사평의회를 구성했다.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지 불과 5년, 남미 대륙 북동부의 작은 나라는 군부 독재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바우테르세는 "부패한 정치인들로부터 국가를 구원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는 오랜 독재의 시작이었다. 1982년 12월 8일, 그는 반대파 지식인과 언론인 15명을 처형하며 공포정치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12월 살인'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수리남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장면으로 남아있다.

역사 사건

도미니카 공화국 사탕수수 농장 노동 착취. 아이티 이주 노동자들이 도미니카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예에 가까운 조건으로 착취당하는 현실. ⓒ Human Rights Watch

수리남의 비극은 단순한 권력욕의 결과가 아니었다. 독립 직후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군부는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삼았다. 바우테르세는 민족주의와 반제국주의를 내세워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 했지만, 실상은 마약 밀매와 연루되며 국가를 사유화했다. 네덜란드는 원조를 중단했고, 국제사회는 수리남을 고립시켰다. 1987년 민정 이양 후에도 바우테르세는 군부를 통해 막후 권력을 행사했고, 1990년에는 다시 쿠데타를 일으켰다. 놀랍게도 그는 2010년 민주적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돼 2020년까지 집권했다. 독재자가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돌아온 것이다.

빌 헤이니 감독의 The Price of Sugar는 도미니카공화국과 아이티 국경지대 사탕수수 농장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한 다큐멘터리다. 크리스토퍼 하트리 신부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는 아이티 이주노동자들의 노예에 가까운 삶을 포착한다. 바테이라 불리는 농장 숙소에서 그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12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린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병원은 꿈도 꿀 수 없다. 영화는 담담한 톤으로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현대판 노예제를 폭로한다. 하트리 신부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자, 농장주들과 정부는 그를 추방하려 한다.

영화 스틸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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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노예제의 실상

The Price of Sugar (2007), 빌 헤이니 감독. 도미니카 사탕수수 농장의 착취 구조를 고발하는 스페인 신부의 다큐멘터리 장면. ⓒ Uncommon Productions

수리남의 군부 독재와 도미니카의 농장 노예제는 표면적으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나는 정치권력의 폭력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착취의 극단이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식민주의의 유산과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구조적 폭력의 산물이다. 바우테르세가 민족주의를 외치며 실제로는 국가를 약탈했듯, 농장주들도 경제발전을 명분으로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다. 권력자들은 늘 대의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탐욕과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The Price of Sugar가 보여주듯, 가장 취약한 이들이 가장 큰 대가를 치른다.

2025년 현재, 수리남은 여전히 바우테르세 시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2023년 12월 살인 혐의로 2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도주 중이다. 동시에 전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있다. 한국의 농장과 공장에서도, 중동의 건설현장에서도, 유럽의 농가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독재와 착취의 형태는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권력과 자본이 인간을 도구화하는 메커니즘은 그대로다. 우리는 값싼 설탕의 대가를, 값싼 노동의 대가를 외면한 채 살아간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늘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바우테르세가 민주주의자로 변신해 권력을 되찾았듯, 착취의 시스템도 합법의 외피를 두르고 지속된다. The Price of Sugar의 카메라가 포착한 것은 단순한 노동 착취가 아니라 인간성의 상실이었다.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상품들 뒤에는 누군가의 고통이 숨어있다. 스마트폰의 콜탄, 초콜릿의 카카오, 커피 한 잔에도 보이지 않는 대가가 있다. 과연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아니면 계속해서 달콤한 무지 속에 머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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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2월 8일 수리남 '12월 살인' 피해자
수리남 12월 살인 사건 공식 기록, 피해자 15명

The Price of Sugar (2007), 빌 헤이니 감독. 도미니카 사탕수수 농장의 착취 구조를 고발하는 스페인 신부의 다큐멘터리 장면. ⓒ Uncommon Productions

21세기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착취당하고 있으며, 한국의 농장과 공장, 중동 건설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수리남의 바우테르세처럼 독재자가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은 민주주의 체제의 취약성과 권력 남용의 위험성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설탕, 초콜릿, 스마트폰 등의 상품들 뒤에는 누군가의 고통이 숨어있다는 불편한 진실은 책임감 있는 소비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수리남의 군부 독재와 도미니카의 농장 노예제는 표면적으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나는 정치권력의 폭력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착취의 극단이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식민주의의 유산과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구조적 폭력의 산물이다. 바우테르세가 민족주의를 외치며 실제로는 국가를 약탈했듯, 농장주들도 경제발전을 명분으로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다. 권력자들은 늘 대의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탐욕과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The Price of Sugar가 보여주듯, 가장 취약한 이들이 가장 큰 대가를 치른다.

2025년 현재, 수리남은 여전히 바우테르세 시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2023년 12월 살인 혐의로 2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도주 중이다. 동시에 전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있다. 한국의 농장과 공장에서도, 중동의 건설현장에서도, 유럽의 농가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독재와 착취의 형태는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권력과 자본이 인간을 도구화하는 메커니즘은 그대로다. 우리는 값싼 설탕의 대가를, 값싼 노동의 대가를 외면한 채 살아간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늘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바우테르세가 민주주의자로 변신해 권력을 되찾았듯, 착취의 시스템도 합법의 외피를 두르고 지속된다. The Price of Sugar의 카메라가 포착한 것은 단순한 노동 착취가 아니라 인간성의 상실이었다.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상품들 뒤에는 누군가의 고통이 숨어있다. 스마트폰의 콜탄, 초콜릿의 카카오, 커피 한 잔에도 보이지 않는 대가가 있다. 과연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아니면 계속해서 달콤한 무지 속에 머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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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 사탕수수 농장 일일 노동시간
도미니카 사탕수수 노동 실태 보고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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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의 독립 후 쿠데타까지 기간
1975년 독립~1980년 쿠데타까지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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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시 바우테르세 12월 살인 혐의 판결형
AP, 2023년 12월 20일 최종심 20년형
2
독재의 부활 가능성
3
소비의 윤리성
공식 예고편

The Price of Sugar (2007) — 빌 헤이니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