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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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째주 · 2025
[6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와 역사의 교차점은 '도구화된 인간'이라는 주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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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와 역사의 교차점은 '도구화된 인간'이라는 주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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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5월, 미 해병대는 애리조나주 나바호 보호구역에서 29명의 젊은이를 모집했다. 필립 존스턴이라는 토목기사가 제안한 혁신적 아이디어였다. 나바호어를 군사 암호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군은 미군의 모든 암호를 해독하고 있었고, 태평양 전선은 정보전의 수렁에 빠져 있었다. 나바호어는 문자가 없는 구전 언어였고, 부족 외에는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체스터 네즈, 로이드 올리버 같은 젊은이들은 캘리포니아 캠프 펜들턴으로 향했다. 그들은 420개의 군사 용어를 나바호어로 번역했다. 전투기는 '다-헤-티-히'(벌새), 폭격기는 '제이-쇼'(큰까마귀)가 되었다.

역사 사건

2차대전 나바호 암호병.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나바호 암호병의 활약은 단순한 언어 번역을 넘어섰다. 이오지마, 사이판, 오키나와 전투에서 그들은 최전선에 투입되었다. 일본군은 단 하나의 메시지도 해독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어린 시절 백인 학교에서 나바호어 사용을 금지당했던 세대였다. '문명화' 정책으로 모국어를 잃어가던 그들이, 바로 그 언어로 미국을 구하게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들의 존재는 1968년까지 군사기밀로 분류되었다. 400여 명이 참전했고, 13명이 전사했다. 하지만 귀국 후에도 원주민 차별은 계속되었다. 투표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던 그들의 희생은 오랫동안 침묵 속에 묻혀 있었다.

존 우(오우삼) 감독의 Windtalkers는 이 역사를 할리우드식 전쟁 서사로 재구성한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조 엔더스 상사는 나바호 암호병 벤 야지(아담 비치)를 보호하는 임무를 받는다. 영화는 사이판 전투를 중심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린다. 엔더스는 암호병이 적에게 생포될 경우 사살하라는 비밀 명령을 받고 있다. 전형적인 우 감독의 스타일로, 슬로모션과 비둘기, 이중 권총 액션이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의 진짜 긴장은 보호자와 피보호자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서 발생한다. 벤 야지는 동료이자 친구인 동시에, 필요하다면 제거해야 할 '자산'이기도 하다.

영화 스틸

Windtalkers (2002), 오우삼 감독. ⓒ Production Company

영화와 역사의 교차점은 '도구화된 인간'이라는 주제에 있다. 실제 나바호 암호병들은 그들의 언어와 문화가 군사적 가치를 지닌 순간에만 존중받았다. Windtalkers의 엔더스와 야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정과 임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엔더스의 모습은, 소수자를 필요에 따라 이용하고 버리는 체제의 위선을 드러낸다. 영화는 할리우드적 화해로 마무리되지만, 역사는 그보다 씁쓸했다. 전쟁 영웅이 된 암호병들은 고향에 돌아와 여전히 '인디언'일 뿐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다시 금기가 되었고, 그들의 공헌은 기밀 문서 속에 갇혔다.

2025년 현재, 우리는 여전히 '유용한 타자'를 만들어낸다. 이주 노동자, 필수 노동자, 돌봄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필요로 하면서도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팬데믹 시기 '영웅'으로 불렸던 이들이 일상으로 돌아온 뒤 다시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나바호 암호병의 역사는 82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만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고, 평화가 오면 다시 차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진보했다고 하지만, 타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최근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나바호 암호병 중 일부는 귀국 후 알코올 중독과 외상후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들은 전쟁의 상처뿐 아니라, 이중의 정체성이 주는 혼란과도 싸워야 했다. 미국을 위해 싸웠지만 미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삶. Windtalkers가 놓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전쟁이 끝난 뒤의 이야기, 영웅 서사 너머의 일상. 우리가 진정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한 인간을 도구로만 보는 시선의 폭력이 아닐까. 그리고 묻고 싶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누구를 '윈드토커'로 만들고 있는가?

공식 예고편

Windtalkers (2002) — 오우삼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