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7월 11일,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의 로프트레이디르 홀에서 역사상 가장 주목받은 체스 경기가 시작됐다. 미국의 바비 피셔와 소련의 보리스 스파스키가 마주 앉은 이 대국은 단순한 보드게임이 아니었다. 냉전의 긴장이 극에 달했던 시기, 두 초강대국은 64개의 체스판 위에서 자존심을 건 대리전을 펼쳤다. 피셔가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아 몰수패당할 뻔했던 2차전, 카메라 소음에 항의하며 탁구장에서 치른 3차전 등 매 경기마다 예측불허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21번의 대국 끝에 피셔가 12.5대 8.5로 승리하며, 소련이 24년간 지켜온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미국으로 가져왔다.
바비 피셔 vs 보리스 스파스키 세기의 체스 대결, 1972년. 냉전의 대리전으로 불린 레이캬비크 세계 체스 챔피언십에서 피셔가 소련의 스파스키를 꺾었다. ⓒ AP통신
이 대결은 개인 간의 경쟁을 넘어 체제 대결의 상징이었다. 소련은 국가 차원에서 체스를 육성했고, 세계 챔피언십은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반면 미국의 피셔는 혼자 공부하며 성장한 천재였다. 그의 승리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승리로 포장됐다. 닉슨 행정부는 피셔를 냉전의 영웅으로 만들었고, 언론은 '세기의 대결'로 연일 보도했다. 하지만 피셔 자신은 정치적 도구가 되기를 거부했다. 그는 체스판 위의 순수한 진실만을 추구했으나, 냉전의 거대한 소용돌이는 그를 집어삼켰다. 승리 이후 피셔는 점차 세상과 단절하며 편집증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Pawn Sacrifice는 이 역사적 순간을 섬세하게 재현한다. 토비 맥과이어가 연기한 바비 피셔는 천재성과 광기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영화는 피셔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레이캬비크 대결까지의 여정을 추적한다. 리브 슈라이버의 스파스키는 단순한 적수가 아닌, 피셔를 이해하는 유일한 인물로 그려진다. 감독은 체스 대국의 긴장감을 마치 액션영화처럼 연출하면서도, 피셔의 내면세계를 놓치지 않는다. 특히 피셔가 호텔방에서 도청장치를 찾아 헤매는 장면, 체스판 앞에서 극도의 집중력을 보이다가 갑자기 무너지는 순간들은 그의 분열된 정신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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