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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째주 · 2025
[6월 5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두 경우 모두 권력이 그은 선이 개인의 자유를 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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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두 경우 모두 권력이 그은 선이 개인의 자유를 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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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5월 17일, 방콕 라차담넌 거리에는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했다.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수친다 크라프라윤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함성이 도심을 뒤덮었다. '블랙 메이'라 불리게 될 이 민주화 시위는 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되었다. 차분하던 분위기는 저녁 무렵 급변했다. 군인들이 실탄을 발포하기 시작했고, 평화로웠던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공식 집계로는 52명이 사망했지만, 실종자를 포함하면 희생자는 훨씬 많았다. 왕실이 중재에 나서며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태국인들의 열망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역사 사건

태국 민주화시위.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태국의 민주화 과정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사뭇 달랐다. 왕실, 군부, 시민사회라는 삼각 구도 속에서 민주주의는 한 발짝 전진하다가도 쿠데타로 후퇴하기를 반복했다.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19번의 쿠데타가 발생했고, 그때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블랙 메이 사건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시민 권력이 군부를 압도한 첫 사례였다. 하지만 2006년 탁신 친나왓 총리에 대한 쿠데타, 2014년 프라윳 찬오차의 군사 쿠데타로 민주주의는 다시 위기에 빠졌다. 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전진과 후퇴, 희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논타왓 넘벤차폴 감독의 다큐멘터리 Boundary는 태국-캄보디아 국경 지대의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둘러싼 영토 분쟁을 다룬다.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불거진 양국의 갈등은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며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감독은 국경 지대 주민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총성이 울리면 숨고, 포격이 멈추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국가가 그은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분열시키는지, 영화는 조용히 관찰한다. 내레이션 없이 진행되는 영화는 관객에게 스스로 판단할 여지를 남긴다.

영화 스틸

Boundary (2013), 논타왓 넘벤차폴 감독. ⓒ Production Company

태국 민주화 운동과 Boundary는 '경계'라는 주제로 연결된다. 민주화 시위는 군부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의 경계를 넘으려는 시도였고, 영화 속 국경은 국가가 만든 인위적 경계다. 두 경우 모두 권력이 그은 선이 개인의 자유를 제약한다. 블랙 메이 시위대가 군부의 총구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듯이, 국경 지대 주민들도 포격 속에서 삶을 지속한다. 경계는 넘어서야 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생존을 위협하는 장벽이다. 논타왓 감독이 보여주는 것처럼, 경계는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우리 의식 속에도 존재한다.

2020년대에도 태국의 민주화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2020년 청년들이 주도한 민주화 시위는 군부 정권 퇴진을 넘어 왕실 개혁까지 요구했다. 그들은 1992년 선배들이 넘지 못했던 또 다른 경계에 도전했다. 한편 태국-캄보디아 국경 분쟁은 표면적으로는 잠잠해졌지만, 민족주의 정서는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다. 경계를 둘러싼 갈등은 형태를 바꿀 뿐 사라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든 영토든, 경계선을 둘러싼 투쟁은 본질적으로 자유와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경계는 누가, 왜 만드는가. 1992년 방콕 시민들은 군부가 그은 금지선을 넘었고, 2013년 논타왓 감독은 국경이라는 경계의 부조리를 카메라에 담았다. 모든 경계는 권력의 산물이며, 그것을 넘으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희생을 요구한다. 하지만 역사는 경계를 넘은 이들에 의해 진보해왔다. 태국 민주화 운동이 보여주듯, 때로는 피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경계는 넘어서야 한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경계들, 그것은 정말 넘을 수 없는 것인가?

공식 예고편

Boundary (2013) — 논타왓 넘벤차폴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