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10월 11일, 남아프리카에서 대영제국과 보어인들 간의 전쟁이 시작됐다.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국의 보어인들은 영국의 팽창 정책에 맞서 싸웠고, 이 전쟁은 20세기의 문을 여는 첫 번째 대규모 분쟁이 됐다. 1900년, 영국군 사령관 키치너 경은 보어 게릴라들의 지원 기반을 차단하기 위해 민간인 수용소를 설치했다. 이 수용소에서 2만 6천 명 이상의 보어 여성과 아동, 그리고 2만 명의 흑인들이 질병과 기아로 사망했다. 문명국을 자처하던 대영제국이 만든 이 비극은 근대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제2차 보어전쟁과 민간인 수용소, 1899–1902년. 영국군이 보어인 민간인을 수용소에 가둬 약 28,000명이 사망한 사건. ⓒ National Archives of South Africa
보어 전쟁은 제국주의의 탐욕과 민족주의에 맞선 저항이 충돌한 전형적인 사례였다. 영국은 남아프리카의 금과 다이아몬드를 원했고, 보어인들은 자신들의 독립과 생존권을 지키려 했다. 전쟁 초기 정규전에서 패배한 보어인들은 게릴라전으로 전환했고, 영국군은 이에 대응해 초토화 작전과 강제 수용소 정책을 펼쳤다. '문명화의 사명'을 내세운 제국이 오히려 야만적인 전쟁 수단을 동원한 역설은 20세기 전체주의의 전조가 됐다. 키치너의 수용소는 나치의 강제 수용소보다 40년 앞선 것이었다.
1980년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의 Breaker Morant는 보어 전쟁의 또 다른 어두운 면을 조명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1902년, 전쟁 막바지에 보어인 포로를 처형한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된 호주 출신 영국군 장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에드워드 우드워드가 연기한 해리 '브레이커' 모란트 중위와 동료들은 상부의 암묵적 지시에 따라 포로를 처형했지만, 정치적 희생양이 돼 총살형에 처해진다. 법정 드라마 형식을 통해 전쟁의 위선과 제국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해부한 이 작품은 호주 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