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7월 26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무함마드 알리 광장.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연단에 올랐다. 3시간에 걸친 연설 중 그가 '드 레셉스'라는 암호명을 언급하는 순간, 이집트군이 수에즈 운하를 점령했다. 페르디낭 드 레셉스는 운하를 건설한 프랑스인이었지만, 이날 그의 이름은 제국주의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영국과 프랑스가 87년간 지배해온 국제 수로가 단 하루 만에 이집트의 품으로 돌아갔다. 런던과 파리의 증권 거래소는 패닉에 빠졌고, 앤서니 이든 영국 총리는 긴급 각료회의를 소집했다.

수에즈 위기, 1956년 10–11월.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맞서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군사 개입한 사건. ⓒ Imperial War Museum
수에즈 운하 국유화는 단순한 경제적 결정이 아니었다. 나세르는 아스완 하이댐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운하 통행료를 활용하려 했지만, 그 이면에는 아랍 민족주의의 열망이 있었다. 미국과 소련이 냉전 구도를 형성하던 시기, 이집트는 비동맹 노선을 표방하며 제3세계의 리더로 부상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비밀리에 공모해 10월 29일 군사 개입을 감행했다. 그러나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소련의 흐루쇼프가 동시에 압력을 가하면서, 두 제국은 굴욕적인 철수를 감수해야 했다. 대영제국의 황혼이 지중해 동쪽 끝에서 시작됐다.
제임스 켄트 감독의 The Suez Crisis는 이 격동의 4개월을 세 인물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토비 스티븐스가 연기한 이든 총리는 처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는 조급함과 제국의 영광을 지키려는 집착 사이에서 흔들린다. 오마르 메트왈리가 표현한 나세르는 카리스마 넘치는 혁명가이면서도 권력의 무게에 짓눌리는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헬렌 맥크로리가 맡은 이든의 부인 클라리사 역은 남편의 몰락을 지켜보며 제국의 쇠퇴를 체감하는 목격자로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켄트는 다큐멘터리적 사실주의와 심리 드라마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역사의 전환점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7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켄트의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https://i.ytimg.com/vi/K3xXM_EmOtw/maxresdefault.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