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2월 25일, 필리핀 마닐라의 에드사 대로에는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했다. 20년간 집권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맞선 '민중의 힘' 혁명이 절정에 달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환호와 희망으로 가득했던 그날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마닐라의 톤도 지구와 같은 빈민가에는 여전히 300만 명이 넘는 도시 빈민들이 하루 1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연명하고 있다. 바랑가이라 불리는 이들 빈민 공동체는 마닐라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며, 쓰레기 더미 위에 지어진 판자촌에서 전기와 수도 없이 살아간다.
필리핀 마닐라 빈민가.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마르코스 이후 들어선 민주정부들은 빈민가 문제 해결을 약속했지만, 오히려 도시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강제 철거만 반복했다. 1990년대 라모스 정부부터 2010년대 아키노 정부에 이르기까지, 빈민가 주민들은 투표용지로는 시민이었지만 일상에서는 여전히 비시민이었다. 특히 2016년 두테르테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은 빈민가를 범죄의 온상으로 낙인찍으며 3만 명 이상의 초법적 살인을 정당화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필리핀 사회는 여전히 극심한 빈부격차와 구조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마닐라의 빈민가는 이러한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숀 엘리스 감독의 Metro Manila는 북부 농촌에서 살던 오스카 가족이 더 나은 삶을 찾아 마닐라로 이주하면서 겪는 비극을 그린다. 쌀농사로는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오스카와 마이는 두 딸을 데리고 수도로 향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것은 희망이 아닌 절망이었다. 사기꾼들에게 전 재산을 빼앗기고 톤도 빈민가의 좁은 판잣집에서 새 삶을 시작한 이들은, 오스카는 무장 경호원으로, 마이는 바에서 일하며 겨우 생존한다. 제이크 마카파갈과 알테아 베가의 절제된 연기는 빈곤이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Metro Manila (2013), 숀 엘리스 감독. ⓒ Production Company
영화는 마닐라 빈민가의 구조적 폭력을 범죄 스릴러의 문법으로 재현한다. 오스카가 동료 경호원들과 함께 현금 수송 중 강도를 모의하게 되는 과정은, 정직한 노동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한 도시 빈민의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가 포착하는 것은 빈민가 주민들 사이의 연대가 아닌 상호 착취의 고리다. 같은 처지의 빈민들이 서로를 속이고 이용하는 모습은, 극도의 빈곤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인간을 고립시키는 과정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구조적 폭력의 결과다.
2025년 현재, 전 세계 도시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억 명이 슬럼가에 거주하고 있다. 서울의 쪽방촌, 뉴욕의 홈리스 캠프, 리우의 파벨라에 이르기까지, 도시 빈민가는 21세기 자본주의의 보편적 풍경이 되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심화된 불평등은 도시 공간의 양극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스마트시티와 메타버스가 논의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수십억 명이 기본적인 위생과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마닐라의 빈민가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도시의 이면이자, 발전이라는 신화가 은폐하는 폭력의 현장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되는 빈민가의 비극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치적 자유가 경제적 평등 없이 온전할 수 있는가? 도시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우리는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이웃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Metro Manila가 보여주는 오스카 가족의 파멸은 단지 필리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폭력의 보편적 양상이며, 우리 모두가 공모하고 있는 불평등의 체계다. 혁명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빈민가의 현실 앞에서, 우리는 진정한 변화란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하지 않을까?

![[7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필리핀 마닐라 빈민가, 숀 엘리스의 시선](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metro_manila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