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트 시 체르노빌 원전 4호기가 폭발했다. 노심이 녹아내리며 방사능 물질이 대기로 분출되자, 원자로 아래 냉각수 저장조에 2만 톤의 물이 고였다. 뜨거운 핵연료가 이 물과 만나면 대규모 증기 폭발로 유럽 전체가 방사능에 오염될 위기였다. 5월 초, 알렉세이 아나넨코, 발레리 베스팔로프, 보리스 바라노프 세 명의 엔지니어가 잠수복을 입고 방사능 오염수 속으로 들어갔다.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치며 배수 밸브를 찾아 열어야 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1986년 4월 26일. 4호 원자로 폭발 직후 방사능 오염을 막기 위해 투입된 소방관과 다이버들의 결사적 작업. ⓒ Igor Kostin
소련 정부는 이들을 '자살 특공대'라 불렀다. 고농도 방사능에 노출되면 수일 내 사망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다이버는 주저하지 않았다. 체르노빌 사고는 단순한 기술적 실패가 아니라 소련 체제의 구조적 모순이 폭발한 사건이었다. 안전보다 성과를 중시하는 관료주의, 진실을 은폐하는 비밀주의가 재앙을 키웠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평범한 엔지니어들이 보여준 희생정신은 체제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들은 명령이 아닌 양심에 따라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기적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뒤 생환했다.
2021년 러시아 영화 Chernobyl: Abyss는 이 극적인 순간을 재현한다. 다닐라 코즐로프스키 감독은 할리우드식 재난 영화의 문법을 차용하면서도, 소련 시대의 일상과 인간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알렉세이는 소방관으로 체르노빌에 투입됐다가 다이버 임무를 자원한다. 영화는 방사능으로 가득한 물속을 헤매는 장면을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연출한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손전등, 거친 호흡 소리, 시간과의 싸움이 관객을 압도한다. 코즐로프스키는 직접 주연을 맡아 공포와 결연함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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