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2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은 거대한 물결로 뒤덮였다. 대통령 선거에서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가 62.6%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개혁파 후보 미르 호세인 무사비를 지지했던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선거 당일 오후 2시, 투표가 끝나기도 전에 아흐마디네자드의 승리가 선언된 것은 명백한 부정의 신호였다. 녹색 스카프와 리본을 두른 시위대는 "내 투표는 어디에?"라고 외치며 평화적 저항을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 대응은 가혹했다. 인터넷이 차단되고, 외신 기자들이 추방됐으며, 시위 진압 과정에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26세 여대생 네다 아가 솔탄이 총에 맞아 숨지는 장면이 휴대폰 카메라에 담겨 전 세계로 퍼지면서, 이란의 '녹색 운동'은 인류사의 비극적인 한 페이지로 기록됐다.
이란 녹색 운동, 2009년 6월. 대선 부정 의혹에 항의하며 테헤란 거리를 가득 메운 수백만 시위대의 모습. ⓒ AFP
이란의 2009년은 단순한 선거 부정을 넘어선 문명의 충돌이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30년간 누적된 모순이 폭발한 순간이었다. 젊은 세대는 인터넷과 위성방송을 통해 외부 세계를 접하며 변화를 갈망했지만, 종교 지도부는 여전히 혁명의 순수성을 고수했다. 아흐마디네자드의 포퓰리즘적 정책은 농촌과 저소득층의 지지를 받았으나, 도시 중산층과 지식인들에게는 후퇴로 여겨졌다. 선거 부정은 이러한 균열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선거 결과를 '신의 축복'이라 선언하자, 시민들은 종교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녹색 운동은 진압됐지만, 그것이 남긴 상처와 질문들은 이란 사회 깊숙이 각인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1년,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A Separation이라는 작품으로 국제 영화계에 충격을 안겼다. 표면적으로는 한 부부의 이혼 과정을 그린 가정 드라마였지만, 그 안에는 현대 이란 사회의 모든 모순이 압축돼 있었다. 시민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를 두고 이란을 떠나려는 아내와, 아버지 곁을 지키려는 남편 사이에서 갈라진다. 남편이 고용한 가정부와의 사소한 충돌은 계급, 종교, 도덕 문제로 확대되며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흐린다. 페이만 모아디와 레일라 하타미의 절제된 연기는 각자의 정의를 주장하는 인물들의 고뇌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특히 법정 장면에서 아이 앞에서 거짓 맹세를 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한 사회의 초상화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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