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세상
세계와 스크린 사이
10월 2째주 · 2025
[10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이들의 존재를 영화는 빛과 그림자로 새긴다
영화로 세상을 보다

[10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이들의 존재를 영화는 빛과 그림자로 새긴다

기사 듣기

1970년 6월 10일, 멕시코시티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일하던 가사도우미 클레오는 여느 날과 같이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믹스텍 원주민 출신인 그녀는 14살에 오악사카의 작은 마을을 떠나 수도로 올라왔고, 이제 스물두 살의 나이에 네 아이의 양육과 집안일을 도맡고 있었다. 그날도 그녀는 주인집 가족들이 깨어나기 전에 아침을 준비하고, 빨래를 개며, 개 똥을 치웠다. 멕시코시티의 로마 노르테 지역에 위치한 이 집에서 클레오는 가족이면서도 가족이 아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었다.

역사 사건

멕시코 가사도우미의 일상.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1970년대 멕시코는 '기적의 시대'라 불리던 경제성장기를 지나고 있었지만, 원주민과 메스티소 하층민들에게 그 기적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전체 가정의 15%가 가사도우미를 고용했고, 그들 대부분은 농촌 출신 원주민 여성들이었다.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한 채 주 6일, 하루 12시간 이상 일했지만, 이들의 노동은 통계에도 잡히지 않았다. 멕시코 사회는 이들의 헌신 위에 중산층의 안락한 일상을 구축했고, 동시에 그들을 철저히 비가시화했다. 계급과 인종의 이중 차별 속에서 가사도우미들은 멕시코 근대화의 그림자였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Roma는 바로 이 시대, 이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감독 자신의 유년 시절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클레오라는 이름의 가사도우미를 중심에 놓는다. 야리차 아파리시오가 연기한 클레오는 말수가 적고 헌신적이며, 주인집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처럼 돌본다. 흑백의 화면 속에서 그녀는 조용히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며, 자신의 고통조차 소리 없이 삼킨다. 영화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1971년 성체축일 대학살—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한 여성의 일상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영화 스틸

Roma (2018), 알폰소 쿠아론 감독. ⓒ Production Company

역사 속 실제 가사도우미들의 삶과 영화 속 클레오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겹쳐진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노동, 주인과의 애매한 거리,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침묵. 쿠아론은 롱테이크와 깊은 포커스를 통해 클레오가 프레임의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다시 주변부로 이동하는 모습을 포착한다. 이는 가사도우미들이 가정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필수적이면서도 주변적인—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이들의 존재를 영화는 빛과 그림자로 새긴다.

2025년 현재, 라틴아메리카에는 여전히 1,800만 명의 가사노동자가 있고, 그중 대부분은 여성이다. 팬데믹 이후 이들의 노동 조건은 더욱 악화되었다가 서서히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한국 사회 역시 20만 명이 넘는 가사도우미들이 일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계급과 인종, 젠더의 교차점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고 있다.

클레오가 바닷가에서 파도에 맞서며 아이들을 구하는 장면을 기억한다. 거대한 파도 앞에서 그녀는 한없이 작지만, 동시에 가장 강인하다. 우리는 매일 집을 청소하고, 밥을 짓고, 아이를 돌보는 이들의 노동을 얼마나 보고 있는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역사책에는 없지만 우리의 일상을 떠받치는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쿠아론이 자신을 길러준 리보에게 바친 헌사를 보며 묻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클레오에게 무엇을 돌려주었는가?

공식 예고편

Roma (2018) — 알폰소 쿠아론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