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7일, 르완다 키갈리에서는 제노사이드 15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폴 카가메 대통령은 국립 경기장에 모인 2만여 명의 시민들 앞에서 "우리는 용서하되 잊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1994년 100일간 80만 명이 희생된 대학살의 상흔은 여전히 깊었지만, 르완다는 '가차차' 재판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를 시도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마을 재판 방식인 가차차는 2002년부터 본격 시행돼 100만 명 이상의 가해자들을 심판했고, 그 과정에서 진실 규명과 용서, 그리고 공동체 회복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추구했다.
르완다 화해 과정과 가차차 재판, 2001–2012년. 1994년 학살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가 마을 단위 재판(가차차)을 통해 화해를 모색한 과정. ⓒ ICTJ
르완다의 화해 정책은 단순한 사법 처리를 넘어선 사회 재건 프로젝트였다. 정부는 '하나의 르완다' 정책을 통해 투치와 후투라는 종족 구분을 공식적으로 폐지했고, 모든 국민을 '르완다인'으로 통합하려 했다. 가차차 법정에서는 가해자가 진심으로 참회하고 피해자 가족이 용서하면 형량이 감경됐다. 이는 응보적 정의보다 회복적 정의를 추구한 것이었지만, 진정한 용서가 가능한가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됐다. 특히 가족을 잃은 생존자들에게 국가가 요구하는 '화해'는 때로 또 다른 폭력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로라 워터스 힌슨 감독의 다큐멘터리 As We Forgive는 바로 이 지점을 포착한다. 영화는 두 명의 르완다 여성 로지와 샹탈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들은 가족을 살해한 가해자들이 감옥에서 나와 같은 마을로 돌아오는 상황에 직면한다. 카메라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처음 마주하는 순간의 긴장과 침묵, 그리고 서서히 시작되는 대화를 담담하게 기록한다. 힌슨 감독은 화해를 미화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며, 용서의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복잡한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