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2월 25일, 필리핀 마닐라의 말라카냥 궁전. 헬리콥터의 굉음과 함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그의 부인 이멜다가 급히 탑승한다. 20년간의 철권통치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1965년부터 시작된 마르코스의 통치는 1972년 계엄령 선포로 독재체제로 전환됐고, 언론 탄압, 정치적 반대자들의 구금과 고문, 그리고 천문학적 규모의 국가 재산 착복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종종 아이러니하다. 독재자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무장 혁명이 아니라 수백만 명의 평범한 시민들이 EDSA 대로에 모여 손을 잡고 기도하며 만들어낸 '피플 파워'였다.

패티 허스트 납치 사건, 1974년. 미국 언론재벌의 손녀 패티 허스트가 좌파 무장단체 SLA에 납치된 후 은행 강도에 가담한 충격적 사건. ⓒ FBI
마르코스 체제의 본질은 단순한 정치적 억압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반공주의를 표방했지만, 실상은 가족과 측근들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착취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멜다 마르코스가 수집한 3,000켤레의 구두는 이 체제의 상징이 됐다. 국민 대다수가 빈곤에 시달리는 동안, 마르코스 일가는 100억 달러에 달하는 국부를 해외로 빼돌렸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사회 건설'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됐다는 점이다. 독재는 늘 거창한 이념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마르코스는 필리핀을 '아시아의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국가를 자신의 사유물로 전락시켰다.
2023년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Dearest: The Radical Story of Patty Hearst는 1974년 미국을 뒤흔든 패티 허스트 납치 사건을 다룬다. 신문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손녀였던 19세 패티는 좌익 무장단체 '공생해방군(SLA)'에 의해 납치되지만, 놀랍게도 얼마 후 은행 강도에 가담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크리스토퍼 코글리 감독은 이 사건을 단순한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당시의 방대한 영상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패티가 어떻게 '타냐'라는 혁명가로 변모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디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추적한다. 영화는 특히 패티의 육성 테이프와 그녀의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권력, 정체성, 그리고 진실 문제를 탐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