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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째주 · 2025
[11월 1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역사적 재난과 다큐멘터리는 '증언'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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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역사적 재난과 다큐멘터리는 '증언'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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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29일 아침,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 시속 200킬로미터의 강풍을 몰고 온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했다. 카테고리 5급의 초대형 허리케인은 도시를 보호하던 제방을 무너뜨렸고, 해수면보다 낮은 지대에 위치한 뉴올리언스의 80퍼센트가 물에 잠겼다. 1,833명이 목숨을 잃었고 10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자연재해였지만, 그 피해의 본질은 단순히 자연의 위력에만 있지 않았다. 가난한 흑인들이 밀집해 살던 로어 나인스 워드는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부유한 백인들이 거주하던 프렌치 쿼터는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재난은 평등하게 오지만, 그 피해는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역사 사건

허리케인 카트리나.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카트리나의 참사는 미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연방정부의 재난 대응은 느리고 무능했으며,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에 매몰되어 자국민의 고통을 외면했다. 뉴올리언스 시장 레이 네긴은 대피 명령을 내렸지만, 차량이 없고 갈 곳이 없는 빈민들은 도시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슈퍼돔 경기장에 모인 2만 5천 명의 피난민들은 전기도 물도 없이 방치되었다. 언론은 약탈과 폭력을 부각시키며 피해자들을 범죄자로 낙인찍었다. 백인들의 '생존을 위한 물품 확보'는 흑인들에게는 '약탈'로 보도되었다. 재난은 인종과 계급의 경계를 따라 다르게 경험되었고, 미국이라는 국가의 민낯이 폭로되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카트리나 1년 후인 2006년, 4시간에 걸친 대작 다큐멘터리 When the Levees Broke를 발표했다. 제목은 1920년대 블루스 곡에서 따온 것으로, 미시시피 강의 범람으로 고통받던 흑인들의 절규를 담고 있다. 리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재난의 전모를 재구성한다. 카메라는 물에 잠긴 집, 지붕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 시신이 떠다니는 거리를 담담하게 비춘다. 정치인들의 공허한 약속과 피해자들의 절망적인 외침이 교차 편집되며, 국가 시스템의 실패가 고발된다. 특히 한 여성이 "우리는 난민이 아니라 미국 시민이다"라고 외치는 장면은 관객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영화 스틸

When the Levees Broke (2006), 스파이크 리 감독. ⓒ Production Company

역사적 재난과 다큐멘터리는 '증언'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카트리나의 생존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을 말로써 역사의 증인이 되었고, 스파이크 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기록함으로써 집단 기억의 보관자가 되었다. 영화는 단순히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당한 자들에게 발언권을 부여한다. 주류 언론이 외면했던 진실들, 정부가 은폐하려 했던 실패들이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 카메라는 권력이 아닌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 서서, 재난의 정치학을 해부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재해는 사회적 재난으로, 개인의 비극은 구조적 폭력으로 재해석된다.

카트리나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팬데믹과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재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코로나19는 카트리나처럼 불평등의 지형도를 따라 차별적으로 전파되었고, 기후변화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더 가혹한 피해를 안기고 있다. 재난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 오히려 재난은 기존의 불평등을 증폭시키고, 취약한 이들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몬다. 카트리나가 보여준 교훈은 명확하다. 제방의 붕괴는 기술적 실패가 아니라 정치적 실패였고, 피해의 불균등은 자연의 변덕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문제였다. 우리는 이 교훈을 기억하고 있는가.

스파이크 리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재즈 트럼펫 연주자 테렌스 블랜차드의 음악을 들려준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는 애도인 동시에 저항이며, 절망인 동시에 희망이다. 뉴올리언스는 재즈의 고향이자 미국 흑인 문화의 요람이었다. 카트리나는 도시를 파괴했지만 그 정신까지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생존자들은 돌아와 다시 집을 짓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회복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국가가 버린 시민들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이 역설적 드라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재난은 끝나지 않았고 제방은 여전히 취약하다. 다음 폭풍이 오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공식 예고편

When the Levees Broke (2006) — 스파이크 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