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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체르노프의 카메라는 역사의 증인이자 고발자가 된다
영화로 세상을 보다

[11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체르노프의 카메라는 역사의 증인이자 고발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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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우크라이나 포토저널리스트 므스티슬라브 체르노프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20 Days in Mariupol'은 2022년 러시아군의 마리우폴 포위전 초기 20일간을 기록한 작품이다. 체르노프의 카메라는 도시 90% 파괴와 2만 명 이상의 민간인 사망이라는 참극을 여과 없이 담아내며, 2024년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2022년 2월 24일 새벽,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다. 키이우, 하르키우, 오데사, 마리우폴 등 주요 도시들에 미사일이 떨어졌고, 전 세계는 21세기에 목격하게 된 대규모 침공에 경악했다. 특히 아조프해 연안의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인구 40만의 이 도시는 동부 돈바스 지역과 크림반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였고, 곧 현대전의 가장 참혹한 포위전의 무대가 됐다. 도시는 완전히 봉쇄됐고, 전기와 수도, 난방이 끊긴 채 시민들은 영하의 추위 속에서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다.

역사 사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마리우폴 포위전, 2022년 2–5월. 러시아군의 마리우폴 포위 공격으로 수천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도시가 폐허가 된 사건. ⓒ AP통신

마리우폴 포위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가장 파괴적인 도시전으로 기록됐다. 러시아군은 무차별 포격과 공습을 감행했고, 병원과 학교, 극장 등 민간 시설도 표적이 됐다. 3월 16일, 수백 명의 시민이 대피해 있던 마리우폴 드라마 극장이 폭격을 받아 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건물 앞뒤로 러시아어로 '어린이'라고 큰 글씨로 써놨음에도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인도주의 회랑 설치를 요구했지만, 대피로는 번번이 차단됐다. 85일간의 포위 끝에 도시의 90%가 파괴됐고, 2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단순한 군사작전이 아닌, 한 도시를 지도에서 지우려는 조직적인 파괴였다.

우크라이나 포토저널리스트 므스티슬라브 체르노프가 감독한 20 Days in Mariupol는 이 참극의 첫 20일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2023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AP통신 취재팀이 포위된 도시에서 유일하게 남아 촬영한 영상들로 구성됐다. 체르노프와 그의 팀은 폭격 속에서 병원과 대피소를 오가며 시민들의 고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산부인과 병원이 폭격당하는 순간, 임산부가 들것에 실려 나오는 장면, 집단 매장지에서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전쟁의 실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영화는 특별한 내레이션이나 음악 없이, 현장의 소리와 증언만으로 진행돼 더욱 충격적이다.

영화 스틸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현대전 증거의 역할

20 Days in Mariupol (2023), 므스티슬라브 체르노프 감독. AP통신 기자팀이 포위된 마리우폴에서 20일간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장면. ⓒ Frontline/PBS

체르노프의 카메라는 역사의 증인이자 고발자가 된다. 그가 기록한 20일은 단지 마리우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전이 도시와 시민에게 가하는 폭력의 본질을 드러낸다. 영화 속 한 의사의 말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것을 찍어주세요. 세계가 봐야 합니다." 이는 1937년 피카소가 게르니카 폭격을 그림으로 남긴 것처럼, 예술가가 전쟁 앞에서 져야 할 책임을 상기시킨다. 다큐멘터리는 허구가 아닌 현실을 다루지만, 그 현실이 너무나 참혹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폐허가 된 도시, 지하실에 숨은 아이들, 눈 덮인 시신들. 이 영상들은 우리가 '21세기'라고 믿었던 시대의 환상을 깨뜨린다.

마리우폴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도시는 현재 러시아 점령 하에 있으며, 생존자들의 증언은 계속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전쟁범죄 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정의 실현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체르노프의 다큐멘터리가 2024년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것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적어도 세계가 이 참극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째 계속되고 있고, 또 다른 도시들이 마리우폴의 운명을 뒤따르고 있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역사의 비극을 목격하면서도, 여전히 무력감에 빠져 있다.

전쟁 저널리즘의 역할은 무엇일까. 총알과 포탄 속에서 카메라를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체르노프와 그의 동료들은 목숨을 걸고 진실을 기록했다. 그들이 남긴 영상은 가해자들이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됐고, 희생자들의 존재를 역사에 각인시켰다. 하지만 이런 기록이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우리는 사라예보를, 알레포를, 그리고 이제 마리우폴을 보았다. 그럼에도 역사는 반복된다. 어쩌면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증언과 영상에도 불구하고, 왜 인류는 여전히 도시를 파괴하고 시민을 학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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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폴 전쟁 전 인구
2022년 기준
특히 아조프해 연안의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20 Days in Mariupol (2023), 므스티슬라브 체르노프 감독. AP통신 기자팀이 포위된 마리우폴에서 20일간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장면. ⓒ Frontline/PBS

전쟁저널리즘이 목숨을 걸고 기록한 영상은 가해자들이 부인할 수 없는 법적 증거가 되며, 국제형사재판소의 전쟁범죄 조사에 핵심 자료로 활용된다.

사라예보, 알레포, 마리우폴 등 수많은 전쟁 기록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반복되는 현실은 기록만으로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처럼 예술가와 저널리스트가 전쟁 앞에서 증언과 고발 책임을 다하는 것이 '21세기'라는 시대의 환상을 깨뜨리고 인류적 성찰을 촉발한다.

체르노프의 카메라는 역사의 증인이자 고발자가 된다. 그가 기록한 20일은 단지 마리우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전이 도시와 시민에게 가하는 폭력의 본질을 드러낸다. 영화 속 한 의사의 말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것을 찍어주세요. 세계가 봐야 합니다." 이는 1937년 피카소가 게르니카 폭격을 그림으로 남긴 것처럼, 예술가가 전쟁 앞에서 져야 할 책임을 상기시킨다. 다큐멘터리는 허구가 아닌 현실을 다루지만, 그 현실이 너무나 참혹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폐허가 된 도시, 지하실에 숨은 아이들, 눈 덮인 시신들. 이 영상들은 우리가 '21세기'라고 믿었던 시대의 환상을 깨뜨린다.

마리우폴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도시는 현재 러시아 점령 하에 있으며, 생존자들의 증언은 계속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전쟁범죄 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정의 실현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체르노프의 다큐멘터리가 2024년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것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적어도 세계가 이 참극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째 계속되고 있고, 또 다른 도시들이 마리우폴의 운명을 뒤따르고 있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역사의 비극을 목격하면서도, 여전히 무력감에 빠져 있다.

전쟁 저널리즘의 역할은 무엇일까. 총알과 포탄 속에서 카메라를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체르노프와 그의 동료들은 목숨을 걸고 진실을 기록했다. 그들이 남긴 영상은 가해자들이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됐고, 희생자들의 존재를 역사에 각인시켰다. 하지만 이런 기록이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우리는 사라예보를, 알레포를, 그리고 이제 마리우폴을 보았다. 그럼에도 역사는 반복된다. 어쩌면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증언과 영상에도 불구하고, 왜 인류는 여전히 도시를 파괴하고 시민을 학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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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폴 포위전 민간인 사망자
AP·PBS Frontline의 2022년 조사, 마리우폴 민간인 사망 최소 2만명 추정
https://www.pbs.org/wgbh/frontline/article/ap-frontline-investigation-mariupol-death-toll-higher-than-estim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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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폴 도시 파괴율
UN-Habitat 등 전후 평가에서 마리우폴 건물 대규모 파괴 확인
https://unhabitat.org/sites/default/files/2023/06/ukraine_damage_and_loss_assessment.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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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폴 드라마 극장 폭격 사망자
2022년 3월 16일
2
역사의 반복성 문제
3
예술 책임
공식 예고편

20 Days in Mariupol (2023) — 므스티슬라브 체르노프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