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세상
세계와 스크린 사이
12월 1째주 · 2025
[12월 1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역사적 사건과 다큐멘터리는 '기록'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영화로 세상을 보다

[12월 1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역사적 사건과 다큐멘터리는 '기록'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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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1월 21일,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 보스니아 내전 종식을 위한 데이턴 협정이 체결되던 바로 그때, 헤이그에서는 또 다른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가 세르비아계 지도자들에 대한 기소장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도반 카라지치, 라트코 믈라디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이들의 이름은 곧 20세기 말 유럽에서 벌어진 가장 잔혹한 인종청소의 상징이 되었다. 1993년 설립된 이 재판소는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국제사회가 만든 첫 전범재판소였다.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라예보 포위전, 코소보 알바니아계 추방. 재판정에 오른 범죄들은 문명사회가 목격한 야만의 민낯이었다.

역사 사건

세르비아 유고전범재판.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세르비아 전범재판은 단순한 법적 절차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티토의 죽음 이후 붕괴한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민족주의는 가장 원시적인 폭력으로 변질되었다. '대세르비아주의'라는 이념 아래 자행된 학살은 20세기 유럽이 극복했다고 믿었던 파시즘의 망령이었다. 국제사회는 르완다 학살을 방관한 죄책감 속에서 발칸반도의 비극에는 개입했지만, 이미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뒤였다. 재판소는 161명을 기소했고, 그 중 90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정의의 실현은 더뎠다. 카라지치는 13년간, 믈라디치는 16년간 도피생활을 했다. 밀로셰비치는 재판 중 옥사했다. 국제법의 한계와 정치적 타협이 정의구현을 가로막았다.

2018년, 세르비아계 미국인 감독 미라 브라노비치를 포함한 여러 감독들이 공동 연출한 다큐멘터리 The Trial이 공개되었다. 이 작품은 ICTY의 24년간 활동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법정 속기록, 증인들의 증언, 검사와 변호인들의 대립, 그리고 생존자들의 침묵. 카메라는 재판정의 일상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포착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통역부스에서 일하는 통역사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증오와 복수의 언어를 중립적인 법률 용어로 번역해야 했다. 영화는 묻는다. 언어가 중립적일 때, 진실도 중립적이 되는가? 피해자의 울부짖음이 법정 기록으로 전환될 때, 무엇이 소실되는가?

영화 스틸

The Trial (2018), 다수 감독 감독. ⓒ Production Company

역사적 사건과 다큐멘터리는 '기록'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ICTY는 700만 페이지가 넘는 문서와 4,500시간의 영상을 남겼다. The Trial은 이 방대한 아카이브에서 정의의 흔적을 찾는다. 하지만 두 기록 모두 같은 딜레마에 직면한다. 어떻게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함을 언어와 영상으로 포획할 것인가? 재판정에서 믈라디치가 보인 조롱하는 미소와 카라지치의 무표정한 얼굴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재판의 형식적 완결성과 정의의 불완전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애쓴다. 법적 판결이 역사적 화해로 이어질 수 있을까?

2025년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범죄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미얀마, 수단, 가자 지구에서도 전쟁범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ICTY의 경험은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정의의 지연은 정의의 부정이라는 법언은 국제법정에서도 유효한가? 세르비아는 여전히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집단학살로 인정하지 않는다. 보스니아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르완다와 달리 발칸반도에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없었다. 법적 정의와 역사적 화해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넓다. The Trial이 보여주듯, 재판은 끝났지만 심판은 계속된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잔혹함 앞에서 법은 무력해 보인다. 그러나 불완전한 정의라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망각과 반복뿐이다. ICTY는 국제사회가 '다시는'이라는 맹세를 지키려는 불완전한 시도였다. The Trial은 그 시도의 기록이자 증언이다.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질문을 남긴다. 정의는 복수와 어떻게 다른가?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 피해자의 고통이 치유될 수 있는가?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질문 - 우리는 정말로 "다시는"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공식 예고편

The Trial (2018) — 다수 감독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