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도서관 앞.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위는 이내 부산 전역으로 번졌고, 18일에는 마산까지 확산되었다. 박정희 정권 말기의 경제난과 정치적 억압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부대가 투입되었지만, 시민들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이 항쟁은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분수령이 되었다. 부마항쟁은 광주항쟁, 6월 항쟁과 함께 한국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된다.
한국 부마항쟁.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부마항쟁은 단순한 학생 시위가 아니었다. 노동자, 상인, 주부까지 가세한 범시민적 저항이었다. 당시 부산과 마산은 수출 중심 경제정책의 최전선이자 그 모순이 집약된 공간이었다.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과 물가 상승에 고통받던 서민들이 학생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정권은 이들을 '불순분자'로 규정하고 무차별 연행과 고문을 자행했다. 하지만 이런 폭력적 진압은 오히려 시민들의 분노를 증폭시켰고, 결국 유신체제 붕괴의 도화선이 되었다.
김봉한 감독의 Ordinary Person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국가정보원의 비밀 공작에 휘말린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손현주가 연기한 주인공은 아내와 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당한다. 장혁이 연기한 국정원 요원은 처음엔 임무에 충실하지만 점차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영화는 국가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그 폭력에 가담한 이들도 결국 또 다른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Ordinary Person (2017), 김봉한 감독. ⓒ Production Company
부마항쟁의 시민들과 Ordinary Person의 주인공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국가는 이들을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부마항쟁 당시 연행된 시민들은 '폭도'로 낙인찍혔고, 영화 속 주인공은 '간첩'으로 조작되었다. 두 경우 모두 국가가 자신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시민을 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구조적 폭력 앞에서 개인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폭력이 체제의 균열을 만들고 변화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2025년 오늘, 우리는 여전히 '평범한 사람'을 위협으로 규정하는 권력의 논리와 마주한다. 테러방지법, 국가보안법 등의 이름으로 시민의 일상이 감시되고, 비판적 목소리는 '가짜뉴스'로 매도된다. 디지털 시대의 감시 기술은 과거보다 더 정교하고 은밀해졌다. 부마항쟁의 거리 시위가 SNS의 해시태그 운동으로 바뀌었을 뿐, 권력과 시민 사이의 긴장은 계속된다. 민주주의는 완성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임을 우리는 반복해서 확인한다.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다. 부마항쟁의 시민들도, Ordinary Person의 주인공도 처음부터 영웅이 되려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인간답게 살고자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소박한 열망조차 위협받을 때, 평범한 사람들은 비범한 용기를 낸다. 46년 전 부산과 마산의 거리에서, 그리고 영화 속 고문실에서 우리는 같은 질문과 마주한다. 오늘 우리에게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12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하지만 국가는 이들을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고 폭력을 행사했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ordinary_person_backdrop.jpg)